이 영 권
벨이 울리면 의자가 나를 밀친다. 출석부가 나를 집어들고 교실이
나에게로 온다. 책이 나를 펴면 나는 삼류급 모노드라마 배우가 된다.
무대에 서면 나는 페스탈로치가 되고 히틀러가 되고 하얀 얼굴의 드라
큘라가 된다. 계백이 되고 연산군이 되고 가증스런 일본순사가 되
고.........
演技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백묵이 나를 들고 칠판이 필기한다. 책상이 아이 코를 쳐 박는다. 간
밤 컴퓨터게임에서 쌍 코피가 났나보다. 핸드폰이 또 아이 하나를 끌
어당긴다. 그 아이가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아이들은 결국 나를 체벌
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아이들이 나에게 잔소리하면 수업이 나
를 망친다. 뻔한 스토리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N세대'의 'N'이 의심스
럽다. 시계가 팔을 늘어뜨리고 아이들을 본다 나를 본다. 보기에 아이
들이 애처로운가보다 내가 너무 느린가 보다 지루한가보다.
희망 없는 시간, 벨이 울릴 때까지 모노드라마는 계속되어야 한다.
요즈음은 이렇게 아이들이 나를 가르친다. 나는 배울 자세가 되어있고
아이들은 가르칠 자세가 되어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책이 나를 덮고
출석부가 나를 들고 문이 나를 열어 교실이 나를 밀어낸다. 이것은 참
엽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