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도 ‘감정근로’시대…교권 개념‧틀 확장해야

2014.02.06 15:36:36

교육 서비스化…이제 교사가 ‘을’

화, 자존감 꺾으면서 감정부조화
스트레스 강도 일반인보다 심각
정신질환 휴‧면직, 자살 지속 증가

정확한 실태‧원인조사부터 하고
양성‧연수에 감정근로 개념 도입
교사 상담시스템 확대‧지원하고
감정근로 질병 인정 법률 보완도

“교사를 감정근로자로 바라봐 줬다는 것, 교사가 처한 어려움을 이해해 줬다는 사실에 반갑고 위안을 받았어요.”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무력감, 어려움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느낀 것만으로 큰 치유가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의 집단 공개상담에 참여한 교사들의 참여후기에는 스스로 ‘감정근로’를 호소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감정근로는 1983년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Hochschild)가 처음 정의했고, 이후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대면업무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으로 풀이된다.

승무원, 판매원, 상담원 등 전형적인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겨냥한 용어로 시작됐지만 교원 역시 늘 학생, 학부모와 부딪히면서도 사회적 기대에 맞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관리하며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교원은 이미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연구, 논문 등에서 감정근로자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한상근 선임연구위원)에서 유치원교사는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 3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는 수요자 중심 교육과 학생, 학부모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교육이 ‘서비스’화 되면서다. 서울 모 중학 교사는 “엎드려 자거나 대드는 학생에게 울화가 치밀지만 감정을 억누른 채, 좋은 목소리로 타일러야 하고 학부모 폭언에도 참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토로했다. 경기 모 초등 교사는 “아이가 따돌림을 당했다며 학부모가 수시로 찾아와 반말, 폭언, 고성, 협박을 하는데 교사니까 참고 또 참아야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상화된 감정근로로 교원들의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있다. 교사로서 실패감, 좌절감, 무력감 등 ‘감정부조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울증, 정신질환, 자살로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마인드프리즘이 교사 50명의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한 결과, 평균 ‘2단계 주의’ 단계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의학적 경고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태다. 반면 1000명의 일반 직장인(사무직, 생산기술직 등) 평균점수는 ‘정상’ 수준이었다. 우울지표도 교사들이 더 높아 우울감은 평균 49.8점(일반 직장인 45.9점), 비관적 사고는 47.6점(〃45.5점)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김왕배(사회학과) 교수 등의 연구(감정노동자의 직무환경과 스트레스, 2012)에서도 감정노동자들이 非감정노동자에 비해 스트레스 경험 확률이 50.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교육 등 공공서비스(공무원) 부문의 스트레스가 개인 서비스(숙박․요식 등) 부문보다 높았다.

우울증, 공항장애 등 정신적 질병으로 휴․면직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이 발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9년 61명이던 휴‧면직 교사가 2010년, 2011년에 각각 69명으로 소폭 증가한데 반해 2012년 112명, 2013년 8월말까지 86명으로 급증 추세다.

심지어 유은혜(민주당·고양일산동) 의원이 2012년 발표한 교원 사망현황(2004~2011) 국감자료에서는 2004년 7명이던 자살 교원이 2009년 16명, 2011년에는 31명으로 늘어났다. 최근 4년(2008년~2011년) 자살 교원은 모두 73명으로 이전 4년간(2004년~2007년) 자살 교원 43명보다 1.7배 급증했다.

지난 2006년 10월, 학생지도에 불만을 품은 한 학부모의 폭언에 시달렸던 광주 A초등교사가 매년 10월이면 심한 우울증을 겪다 2011년 10월 자살한 사건은 대표적 예다.

일본도 이미 교원의 감정근로가 화두가 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2010년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됐던 신규 교사들의 이직률 급증 원인에는 갈수록 거칠어지는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교원들의 감정근로 스트레스는 결국 수업과 업무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 유은혜 의원은 “교원들의 정신건강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부차원의 실태조사라도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원 양성, 연수에 감정근로 개념을 도입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교육활동 중에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과 교사에게 기대되는 행동 사이에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지 대응전략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는 무조건 참거나 설득하기보다 학생, 학부모의 불합리한 행위 유형에 따라 바람직한 행동 및 감정표현 지침을 마련해 적절히 처신함으로써 감정근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근 선임연구위원은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에서 “감정노동은 스트레스를 누적시켜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야기한다”며 “감정노동을 업무상 질병에 포함하고 감정노동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명시하는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공무원연금법 상, 공무상 질병에 교원들의 감정근로를 명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전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사상담센터 설치‧운영, 힐링프로그램 확산 등을 주문했다.
조성철 chosc@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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