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불신·불안…언제든 도망치려
창문 아래 신발 두고 자는 아이들
특성 이해하고 맞춤 상담·교육 필요
일반학교서 어울려 배우도록 살펴야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탈북청소년은 2000여 명. 그러나 공교육이 품어주지 못한 수많은 탈북청소년들은 학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과 따돌림 등을 이유로 학교를 떠나고 있다. 이들의 학업중단율은 일반 학생의 3배다. 일부는 대안학교를 찾는다. 지난해 대안교육시설 재학생은 전체 2254명 중 232명으로 약 10%에 달했다.(2013년 4월 기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 ‘(사)물망초’는 탈북자들을 기억하고 작은 일부터 돕자는 취지로 2012년 출범한 단체다. 같은 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물망초학교’도 개교했다. 이 학교에서는 현재 5~26세 탈북청소년 13명이 새 희망을 꿈꾸고 있다. 18일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동국대 법대 교수)을 만나 탈북청소년 지원방안에 대해 들었다.
물망초학교 입학생은 대부분 한 번도 정규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상태다. 사실상 공교육 체제가 무너진 북한. 15세 아영(가명)이는 아직 한글도 모른다. 이런 아영이가 일반 학급에서 틀에 박힌 교과서로 진도를 맞추며 함께 공부할 수 있을까. 박 이사장이 탈북청소년을 위한 1:1 맞춤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아영이는 현재 7명의 교사들에게 집중 지도를 받으며 학업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탈북청소년에게 학업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공포와 불신 등 온갖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책으로 공부하기 이전에 마음의 상처를 먼저 어루만져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밤에 잠을 못자요. 4학년 준식(가명)이는 아직도 이불에 실례를 해요. 창문 밑에 신발을 가져다놓고 자는 아이도 있어요. 본능적으로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거죠. 이제 7살 된 아이가 두 번이나 북송됐다 왔다면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심리가 불안정하고 사람을 못 믿게 된 것이 이 아이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때문에 물망초학교에서는 음악·미술·놀이치료, 애니멀테라피 등 동원할 수 있는 각종 심리치료라면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 그는 “탈북청소년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어떤 지원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예산이다.
현재 대부분의 탈북청소년 교육관련 민간단체나 대안학교들은 국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물망초학교 역시 개인 후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원 회원은 400여 명에 달하지만 후원금만으로는 한 달 운영비를 충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물망초학교에 재직중인 교사는 17명이다. 그나마 정식 고용된 교사는 6명 뿐.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는 “탈북청소년들을 학교에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교사들의 깊이 있는 이해가 절실하다”며 “적어도 한 학교에 한 명 정도는 탈북청소년 관련 연수를 이수하는 등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다그치기만 하면 가뜩이나 불신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 어떻게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겠어요. 사랑으로 감싸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예요. 특성과 성향이 어떤지 알아야 사랑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거죠.”
그는 “탈북청소년들만 따로 모아놓고 탈북교사가 이들을 상담하고 지도하게 하는 형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에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만의 고립된 섬을 만들어 소외로 내모는 원인이 된다는 것. 박 이사장은 “탈북학생 상담은 탈북교사가 맡을 것이 아니라 탈북자에 대한 이해를 갖춘 전문상담교사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 교육부에서 탈북학생용 교재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 문제”라고 말했다. 교재를 개발해 따로 지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공백을 메워주려는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탈북청소년 2000여 명도 제대로 품지 못하고 있는데 통일이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100만의 탈북청소년을 가르쳐야 합니다. 통일 시대에 대비해서라도 선생님들이 조금 더 탈북청소년들에 대해 관심 갖고 이해해주세요. 물망초도 힘껏 나서 도울 것입니다. 연수가 필요하신 분들, 언제든 저희 학교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