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교사들과 8년 째 재능기부
저소득층 자녀들에 학업 지도
학교폭력·진로·가정문제도 상담
18년 째 자선공연도 이끌어
8226만원 자선금 모아 기부
“재능 나누고 남 돕는 일에
더 많은 교사들 동참했으면”
풍요 속 빈곤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가는 세상이다. 성공의 기회는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왜곡된 속설에 청소년들의 가슴에는 멍이 든다. 이들의 좌절을 일으켜 세우고 꿈꿀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현직 교사들이 만들어 준다면? 한밤중 배움일지라도 활활 타는 촛불처럼 밝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할 것이다. 야학 ‘촛불교실’은 그렇게 시작됐다.
19일 오후 6시. 서울 중계 2․3동 주민센터로 10명의 교사와 13명의 학생이 모였다. ‘제9기 촛불교실 개강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촛불교실은 저소득층, 한부모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초등 6학년 어린이들의 학력을 향상시켜 중학교 생활을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06년 시작된 야학이다. 현직 교사 50여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져 왔고 그 중심에는 박상철 서울 번동초 교감이 있다.
개강식이 열리자 교사와 학생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렸다. 선생님, 부모님께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인사하는 아이들 표정이 제법 결연하다. 12월 초까지 진행되는 이 수업에 3분의 2 이상 참여한 학생에게는 졸업식 날 20만원의 장학금도 지급된다. 박 교감은 인사말에서 “학업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따돌림, 진로, 가정문제 등 고민이 있다면 다른 곳을 찾지 말고 언제든 촛불학교 선생님들을 찾아 달라”며
“늘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의 앞날을 걱정하고 최선을 다해 상담 하겠다”고 다독였다.
이곳에서 줄곧 아이들을 지도해왔던 박 교감은 2012년 승진과 함께 수업에서는 손을 뗐지만 운영은 계속 책임지고 있다. 그는 “촛불학교가 입소문을 타 지난해 5명이었던 수강생이 올해는 13명으로 늘었다”며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학구열도 높은 편이고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도 매우 돈독하다”고 밝혔다. 실제 촛불학교 졸업생들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보조교사를 자청하고 후배 학생들의 학업을 돕기도 한다.
그가 촛불교실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공연․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땄다. 이후 ‘얘들아 용궁가자’, ‘방구 아저씨’, ‘엄마는 파업 중’ 등 다수의 어린이 뮤지컬 연출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다.
“연출에 관심 갖게 된 것도 연극이나 공연을 제대로 배워 아이들 교육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북부교육지원청 학예예술제에서 공연하던 어린이들을 보고 이들의 기량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몇몇 교사들과 의기투합하게 됐죠.”
이후 박 교감은 노원구에 거주하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을 모아 ‘사랑의 빛 4개의 촛불 자선공연’을 매년 12월에 개최했다. 공연 3개월 전부터 매주 모여 기획과 연출도 함께 준비했다. 공연은 학생들이 직접 꾸미는 뮤지컬, 합창, 악기 연주 등 매년 다르게 구성된다. 그동안 참여한 학교는 유치원 17곳, 초등학교 46곳, 중․고교 3곳 등이며 일반 공연단체 22개도 재능기부로 찬조출연했다. 참여 학생 수는 4633명에 달하며 공연을 도운 교사 수도 320명에 이른다.
박 교감은 “18년 간 이어진 공연인지라 이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자기 역할을 잘 알고 있어 호흡이 척척 맞는다”며 “그간 모아진 8226만 원의 자선금은 소년소녀가장 40명, 모자가정 45곳, 독거노인 74명, 노인정 6곳, 노인복지관 2곳, 어린이 보육시설 1곳에 기부됐고 일부는 촛불학교 운영기금으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그는 “자선공연은 1년에 한 번 뿐이라 아쉬워하는 교사들이 많았다”며 “상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던 중 ‘야학’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자선공연이 지금 촛불학교의 밑거름이 된 셈. 수업 장소를 제공받는 것, 교사진을 구성하는 것 등 물론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기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박 교감은 “운영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적은 없었다”며 “주민센터가 나서준 덕분에 지역사회와의 협력 모델도 구축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주변이 남을 돕는데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1년 후에는 모두가 ‘하기 참 잘 했다’며 보람을 느끼더라고요. 누군가 가진 재능이란 ‘선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의 재능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눔이 필요한 세상, 교육자로서 우리의 재능을 기부하는데 더 많은 선생님들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