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께 인사 드리려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한채영(42·국어) 교사가 들어서자 두명의 수석교사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한 교사는 새 학기를 맞아 '학교의 어른'으로 통하는 수석교사들에게 문안 인사 차 수석교사실을 찾았다.
1993년 7월 이후 교육부가 교총과 4번이나 합의하고도 시행을 미루고 있는 수석교사제를 사립인 서울 중동고(교장·정창현)는 95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중동고의 수석교사들은 '존경받는 학교의 어른'으로서 교내 자율장학과 교원들간의 갈등 중재, 교장의 자문위원, 학생들의 인성교육 등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으로 나타나, 지난해 평준화체제에서 중동고는 선발집단인 외국어고교와 비슷한 대입성적을 올렸다.
중동고의 수석교사는 선임교사 경력 5년 이상(교직경력 27년·만 55세 이상)의 교사 중에서 평가(교원평가·선임교사 상호평가·학교장 및 재단평가)를 거쳐서 재직교사의 3%범위 안에서 선정하고, 교감과 교장임기를 마치면 당연직(3% 외)으로 임명된다. 수석교사 직위는 정년까지 보장되며, 월 20만원의 수당이 주어진다. 이들은 주당 10시간 이내의 수업을 맡고 수석교사실이 제공된다. 그 동안 중동고에는 두 명의 수석교사가 정년퇴임 했고, 현재는 김동수(61)· 양승관(58·교감에서 수석교사로 임명) 두 명이 있다.
선임교사는 1급 정교사 7년 이상(교직경력 20년·만 50세 이상)인 교사 중에서 심사를 거쳐 선정(재직교사의 15% 내)하고, 30년 이상 만 55세 이상의 경력교사는 당연직으로 임명된다. 현재 14명의 선임교사가 있고, 이들은 월 10만원의 수당을 받고, 수업시수는 평교사와 같다.
수석교사의 가장 큰 역할은 동료장학이다. 중동고는 1년에 두 번(3월과 9월) 보름간씩 자율연수를 실시한다. 이때 수석교사는 교장, 교감과 함께 수업에 참관해서, 개선점을 지적해 준다. 양 수석교사는 "교육내용보다는 교수방법 등에 초점을 두고 지도한다"며 "후배교사들이 조언을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들의 수업평가는 교장·교감의 교사평가 때 반영된다. "초장기에는 계량적으로 수업을 평가했으나 자연스럽지 않아, 질적인 조언으로 바꿨다"는게 양 수석교사의 설명이다.
말썽꾸러기들의 인성교육도 수석교사들의 몫이다. 중동고는 매일 자성교실을 운영한다. 지각하거나 수업 중 떠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1시간씩 명심보감을 읽히거나 반성문을 쓰게 한다. "원래 수석교사가 할 일은 아니었지만 원해서 맡게 됐다"고 김 수석교사가 설명한다. 자연히 이들의 퇴근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빨리 출근해서 등교지도 하고 늦게 퇴근하니 젊은 교사들이 저절로 따른다"는 게 올해 정년 퇴임한 최광용(62) 전 수석교사의 말이다. 선임·교감·수석교사를 모두 거친 그는 "정년을 앞 둔 교원들이 나태해지기 쉬운 반면, 수석교사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교직원들간의 갈등 해결도 수석교사가 맡는다. 무거운 문제가 있으면 선임·수석회의에서 의논하고, 상조회 회장도 수석교사가 맡고 있다. 교장을 대신한 학교대표로 각종 회의나 행사에 참가한다.
정창현 교장은 "30년간 1급 정교사를 하고도 교감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수석교사제는 승진에 숨통을 터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수석교사가 옥상옥(屋上屋)이 아니냐"라는 견해에 대해서 정 교장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굳이 비유하자면 집 옆에 또 다른 집을 세우는 옥측옥이 맡겠죠"라고 말한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부담스런 액수는 아니예요" "투입에 비해서 성과가 훨씬 많으니 투자할 만 합니다."라고 답한다.
중동고의 수석교사제에 대해서, 중동고에서 근무하다가 교육개발원 연구원으로 간 정수현 박사는 "교장임기제가 적용되는 국·공립에서 더 유용한 제도"라고 말한다. 교총의 한재갑 정책교섭국장은 "수석교사가 교장·교감과는 완전히 별개의 라인인 자격제를 주장하는 교총안과는 다르지만, 정부에서도 못하는 것을 사립학교에서 시행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교육부는 확정된 교종안에서 수석교사제를 '검토한 후 추진할 과제'로 분류하고, 세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