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포럼 몇 번을 했는데… ‘보텀업’ 교육과정 어디 갔나

2014.09.22 10:12:35

교육과정 총론 공청회


초등시수, SW·안전교과 등 기존 입장 고수
인성 필요성 부각되는데 ‘창의융합’만 강조
현장의견은 범교과 주제 등 일부만 반영해
수능 자격고사화 등 입시연계 요구 이어져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 공청회’가 12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렸다. 그러나 6월 18일 열린 1차 현장포럼에서 나온 목소리들이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반복됐다. 교원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진 사안에 대한 의견이 일부 밖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문제는 입시 연계였다. 총론 단계에서 구체적인 입시제도 변경안을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해도 입시와의 연계가 담보되지 않을 경우 교육과정 개정이 의미를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원춘 경기 창곡중 수석교사는 “통합형 교육과정이 성공하려면 수능이 필수적으로 변해야 한다”면서 “수능 자격고사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수능은 국·영·수·사·과에 대해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 수능을 실시하고 다른 교과의 정상적 수업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학생부 성적을 통한 입시 반영 방안을  제시했다.

이성권 서울 대진고 교사도 “통합교과 외의 과목을 시험 보게 되면 다시 문·이과로 나눠지는 것”이라면서 “수능에 종속된 교육과정 문제를 풀려면 수능은 합격·불합격(pass·fail)만 구분하는 방식으로 치르고 국가가 가져간 교사의 평가권을 온전히 돌려줘 학생부 전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 1, 2학년 시수 확대도 도마에 올랐다. 박미경 인천용현초 교사는 “1~2학년에게 5교시 수업은 과도한 부담”이라이라며 “대부분 교원이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시수 확대에 대한 대안인 1~2학년 전담교사 배치도 “교사가 바뀌는 경우 아이들의 적응이 힘들 것”이라며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안전교과 신설 도입에 대해서는 김신호 교육부 차관까지 ‘개인 의견’이라면서 “안전교육을 과연 학문의 성격을 가진 교과와 동등한 수준에서 교과로 설정할 수 있겠냐”며 의문을 표했다.

박미경 교사는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과를 신설하는 것을 우려한다”며 현행 주제별 통합 교과서에 ‘안전’ 주제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도 “이슈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교과를 만드는 것은 교육과정학의 관점에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과정에 소프트웨어 교과를 필수로 하는 방안에 대한 반발도 이어졌다. 박 교수는 “안전교육 강화와 소프트웨어 교육 활성화는 현 정부가 원하는 것을 억지로 포함시킨 느낌이 강하다”며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하고 공감대가 형성돼도 기존 교과에 해당 단원을 신설하는 안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조영종 충남 천안부성중 교장은 “필수교과가 많아서 줄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쏟아지는 가운데 갑자기 필수교과를 늘리겠다면 좋아할 사람은 정보 교과 관련자들 뿐”이라며 “필요하다고 다 필수교과로 만들어야 한다면 환경, 보건, 한문도 자기 교과를 필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창의·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는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남기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는 창의·인성 교육을 강조했는데 인성을 제외했다”며 “인성을 기본 방향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등교육과정과 누리과정 연계 강화, 범교과 학습주제 감축, 집중이수제와 학교스포츠클럽 운영 합리화 등 현장의견이 반영된 사안도 ‘부족하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반응이었다.

조영종 교장은 “범교과 학습주제를 줄이겠다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15개로 줄이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39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실상은 하나도 없던 주제들이 목소리 큰 집단에 의해 하나씩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차제에 모든 범교과 학습 주제를 교과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별도의 주제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 방청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조 교장은 “이수 과목을 10과목 이내로 권장해도 안 지키는 학교는 안 지킨다”면서 “집중이수제 때문에 학교는 엉망이 됐는데 이제 미련을 버릴 때도 됐다”며 교육당국을 향한 쓴 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학교스포츠클럽 활동도 창의적 체험활동 총 시수에 포함해 예시로 제시하되 운영은 학교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육과정과 누리과정 연계 방안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박미경 교사는 “연계를 이유로 학문적 교과 중심으로 재구조화하자는 주장은 현장 중심이 아닌 교육과정 전문가 중심의 시각”이라면서 “융합형 인재를 위해 문·이과는 통합한다면서 가장 통합학습이 쉽고 이제 막 정착을 시작한 초등 통합교과서를 폐기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과 편제를 연계시키기보다는 내용 중복을 줄이고 난이도 중심의 연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은수 jus@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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