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육감들이 집무를 시작한 지도 몇 달 지났다. 그래서인지 부쩍 새롭게 생산된 공문들이 날아들고 각종 정책들을 홍보하기 위한 연수와 교육들이 하달되고 있다. 때를 맞추어 교육에 관심이 없던 국회의원들도 학교에 ‘긴급’이라는 머리말로 온갖 자료들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인지 빛 좋은 개살구를 만들고자하는 정치적 실험의 장인인지 분간이 어렵다.
업무경감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한쪽에서는 터무니없는 공문들을 내려 보내고, 예전의 혁신학교다, 교과 교실제다, 무상급식이다 하여 예산만 허비하더니 올해도 포장을 달리한 교육상품들을 재포장하고 있다. 말로는 ‘사람이 중요한 교육’, ‘참여와 소통의 문화’, ‘학교평가’, ‘혁신’ 그리고 ‘단 하나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구호 아래 ‘배움중심’이다, ‘교과 클러스터’, ‘선행학습금지’, ‘자유학기제’, ‘다양한 교육과정’ 등 현란한 상품들을 선보이는데 마음은 헛헛하다.
오랫동안 교육청에서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과교실제 또는 혁신학교, 연구학교 등에 많은 예산을 특별 지원했다. 그러한 사업을 신청한 학교는 시설 개선을 하고 인건비를 지급하며 예산을 풍족히 사용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다량의 물이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콩나물은 자라는 법인데, 그러나 학교현장에 투자한 막대한 예산에 비해 우리 학생들은 콩나물처럼 자랐을까. 결국 교육감들의 섣부른 교육철학과 고집이 빚어낸 얼버무림이 됐다.
최근에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9시 등교를 강제적으로 시행하게 했다. 등교시간은 교장 재량인데 난처하게 됐다. 협조를 안 한다면 직간접적인 불이익이 따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이라고 하지만 내용까지 진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청소년은 9시에 학교에 간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건강한 수면을 취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등교를 한다. 정말 그럴까? 관료들이여,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대한민국에 사는 아이들이 과연 공부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하는가. 기특하게도 그러한 아이들은 소수이다. 아버지의 가난을 더 이상 물려받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또한 부모의 선견지명으로 철이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부모의 강요에 의해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문제는 다수의 아이들이 공부와는 담쌓고 정말 자율적으로 놀며 타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 인권조례가 그러한 휘발적 감성에 불을 붙여 교육 현장이 타들어 가는데 관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한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 꿈을 심어 준다고 해도 거부한다. 그들의 스승은 교실에 있는 게 아니고 TV와 스마트폰 속에 있다. 프로 게이머나 연예인처럼 즐기며 살고 싶어 한다. 9시 등교니까 밤늦게까지 이성친구와 놀다가 돌아와 동영상을 보고 ‘카톡’하다 늦잠 잘 수 있어 오히려 천국을 누리는 것 같다. 늦게 귀가하는 부모도 그러려니 하며 방관한다. 머리를 염색하고 피어싱하고 줄여 입은 교복에 화장하는 것이 추세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니까, 그냥 되는대로 사는 무책임 무개념의 부모와 아이들.
9시에 등교해서도 1교시부터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선생은 어찌해야 하는가. 자는 아이를 훈계하면 도끼눈을 뜨고 짜증스레 째려보는 아이들과 전화로 협박하는 부모를 당신이라면 어떻게 응대하겠는가. 일부 학교에서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에게 ‘제발 학교에서는 피우지 말라’고 사정한단다. 학교와 선생을 우습게 아는 사회에 미래가 있기는 한가. 교육의 문제는 다양한 가닥으로 꼬여 있어 진보라는 정책만으로 해법을 찾을 수는 없다.
일단 건강한 교육을 위해서 건강한 가정을 회복해야 한다. 부모가 아무런 철학도 없이 제멋대로 아이를 버려놓고 학교에 맡겨버리면 학교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교육문제는 사회문제, 가정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교육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타락한 가정이 타락한 아이를 키워내고, 부모의 폭력 또는 불륜으로 망가진 가정이 아이의 꿈도 망가뜨린다. 아이의 반항적 행동 또는 불신과 무기력한 성향이 애초부터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교육이 바로 서려면 범사회적인 ‘건강한 가정 만들기’, ‘부모 역할 제대로 하기’의 캠페인으로부터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 아이를 부추기는 왜곡된 성인문화나 연예 프로그램, 선정적 콘텐츠, 상업적 게임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포르노그래피와 쾌락이 노골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뿌리가 잘린 교육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 교육 관료들은 심각하게 고민하며 묵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