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해답은 있을까. 가시덤불처럼 온갖 교육론과 자기주장이 비꼬인 현 상황에서 ‘이것이 진리다’고 할 수 있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답은 있을까.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해가 뜨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는데 신탁(神託)과 같은 절대적 교육은 가능한가.
외래문화 무분별한 수용 문제
플라톤으로부터 그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해 교육론은 얼기설기 구축됐다. 페스탈로치, 루소, 피아제, 프뢰벨, 존 듀이, 헨리 애덤스 등 수많은 이들이 교육을 고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원을 세웠던 성현들을 비롯해 ‘동몽선습’의 박세무, ‘격몽요결’의 율곡 이이가 그에 해당한다. 또는 ‘죽은 시인의 사회’, ‘수레바퀴 밑에서’, ‘언제나 마음은 태양’과 같은 문학작품과 대중영화 역시 우리에게 좋은 교육의 귀감이 됐다.
역사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그동안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고유한 문화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을마다 두레와 향약을 뒀으며, 미풍양속과 학문적 수양을 위해 서당과 서원 그리고 향교와 성균관을 열어 인간다운 인간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그 중에서 서당은 ‘禮樂射御書數(예악사어서수)’를 가르쳤는데 모두 보편적 인륜을 중시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예’를 맨 앞에 둔 것은 ‘예’가 개인의 기본수양이기보다 사회적 약속이며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러는 강제되기도 하며 회초리도 수반됐던 교육의 궁극이었다.
우리나라에 생경한 서양의 학문이 들어온 것은 1919년 이후다. 일본을 경유해 물밀 듯 들어온 그것들로 말미암아 우리 의식주는 물론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탱자를 귤로 만들던 조상의 지혜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무차별적인 서구의 쓰나미가 안마당을 쓸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방이후부터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져 유학파 청년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신학문에 매료돼 우리 몸에 흐르는 소중한 것들까지 망기(忘棄)하고 말았다. 요즘 대학 강단에서 유학파 교수들이 득세해 대부분의 사례나 자료를 해외에서 인용하고 분석해 논문을 쓴다. 최신 서양의 것이라면 절대적 궤범인양 무분별하게 우리의 토양에 이식하고, 그것에 경도된 사람들은 서양의 잣대로만 해부하려 든다.
전통교육 장점 접목하는 지혜를
햄버거와 콜라를 좋아하는 아이들, 수불석권이 아닌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그리하여 개별화되고 쾌락주의에 젖어버린 아이들에게 온갖 교육의 진보이론이 참교육인 양 불을 지피고 있다.
‘스승은 엄하고 학생은 공경해서 각각 그 도를 다해야 한다(師嚴生敬)’고 말씀하신 퇴계선생의 음성이 아직 역력한데, 그리고 단원의 ‘서당도’에서의 눈물을 훔치는 아이의 표정이 선연한데, 우리의 교육은 어디에서 얽혀있는 것일까. 청운의 꿈도 없고 인의예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아이들, 스승이 무기력하게 한숨 쉬는 교실, 교육을 얕잡아 보는 부모와 전통교육을 여반장(如反掌)으로 전복시키는 관료들.
문득 청학동에서 들려오는 회초리 소리가 하늘을 매섭게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