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정성·사랑 주렁주렁… 제자 위해 ‘농부’ 자처한 선생님

2015.10.15 18:35:20

이의동 서울 문현고 교사



교내 빈 공간에 과실樹 심어
살아있는 체험장 학교에 구현
서울 170개교 참여도 이끌어

“공부하다 지칠 때 힘·용기 얻는
‘쉼의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라”


“우리 사회는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교육할 땐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 과일은 맛있게 먹어도 어떻게 열매 맺고 자라는지 과정을 모릅니다. 학교에 이런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사과, 감, 배, 포도… 과일이 주렁주렁한 나무로 둘러싸인 학교. 이런 곳이라면 다닐 맛나지 않겠어요?”

13일 서울 문현고등학교. 교문을 들어서자 나무 수십 그루가 반겼다. 포도, 체리, 배, 감… 가지에 걸린 이름표가 바람에 흔들렸다. 개교한 지 5년밖에 안 됐지만, 조경이 아름답기로 소문 자자하다. 특히 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교정을 바라보는 행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농촌에서나 접할 수 있는 각종 과실나무가 문현고에 뿌리 내리게 된 건 이의동 교사 덕분이다.

학교 곳곳 빈 공간에 작은 농촌을 구현하기 시작한 건 2008년 양재고에 재직할 때다. 벼, 고추, 호박을 비롯해 농작물 40여 가지를 심었다. 시간 날 때마다 잡초를 솎아주고 물과 거름을 주면서 온갖 정성을 쏟았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저 농작물이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겼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고향에 계신 아버님의 도움으로 농사짓기 시작했다”면서 “어려움이 적지는 않았다”고 했다.

“요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짓궂더군요. 기껏 심어뒀던 벼를 뽑아버리는 아이들, 고추 모종 지지대를 넘어뜨리는 학생… 속상했죠. 그래도 꿋꿋하게 다시 정비했습니다. 이듬해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졌어요. 얼마나 자랐나, 관찰하는 학생부터 곁에 다가와 ‘나중에 직접 길러보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까지 생겼지요. 보람을 느꼈습니다.”

과실나무를 기른 건 2010년. 지인이 기르던 보리수 22년생 아홉 그루를 기증 받아 학교 뒷산 아래에 심었다. 여기에 2·3년생 과실 묘목을 사서 더했다. 아이들은 그가 가꾼 교정에서 공부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정도 얻었다.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도 ‘좋은 공부 환경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2011년, 문현고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나무 심기는 계속됐다. 개교한 지 1년 밖에 안 된 이곳에서 그의 진가가 더욱 빛났다. 흙과 모래가 전부였던 땅에 꽃 잔디 6000포기 심는 것을 시작으로 복숭아, 키위, 사과, 체리, 대추 등 다양한 묘목을 채웠다. ‘1교사-1나무’ 결연도 맺었다. 이 교사는 “결연을 맺은 동료 교사들이 기대 이상으로 나무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했다”고 귀띔했다.

“심은 지 몇 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씨알 굵은 열매가 열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래도 매년 작은 결실을 맺고 있답니다. 해가 지날수록 성숙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죠. 여기 감나무 보이시죠? 가지마다 다른 종류의 감을 접 붙여서 다른 열매를 얻고 싶어요. 열매를 맺는 과정이 꼭 우리 내 삶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아이들이 공부하다 지쳤을 때 교정을 거닐면서 꿈과 희망을 떠올리고, 잠시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학교 과일나무 심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서울 소재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동참을 호소했다. 그 결과, 170여 개교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현재 경기, 전남 지역 학교까지 그 영역을 넓힌 상태다. 최근에는 졸업 50주년은 기념해 동창들과 뜻을 모아 모교인 전북 덕천초에 나무 구입비용을 쾌척했다. 이 교사는 “전국 학교에 과일 나무가 탐스럽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도움이 필요한 학교가 있다면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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