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초등교육 실험대상 삼지 말라

2015.11.23 10:17:03

지난달 21일 새누리당이 가계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앞당기기 위해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고 학제를 개편하는 방안을 정부에 주문했다. 정부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학제개편은 2009년에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깜짝 발표를 했다가 여론에 밀려 후퇴한 바 있다. 툭툭 던져 보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아님 말고 식의 정책을 내놓는 일은 실로 무책임한 일이 분명하다. 그것도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정책은 더욱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발달 수준 무시한 만 5세 입학

초등교 1학년 입학 나이를 만 5세로 낮추는 것은 여러 가지로 우려하는 바 크다. 초등교 1학년 담임을 여러 해 하고 있는 현직 교사로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도 생일이 늦은 학생은 뒤따라가며 힘들어 하는 게 현실이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은 같은 나이라 해도 몇 개월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생일이 빠른 학생들은 공부도 잘 따라 오고 기본생활 습관도 우수하며 감정 조절 능력도 탁월하다. 반면 또래에 비해 몇 달 늦은 학생들은 마치 동생 같다.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여러 번 반복해야 알거나 적응하기 힘들어해서 자주 울곤 한다. 오히려 생일이 늦은 학생은 한 해 늦춰서 보내면 매우 우수한 학업 성적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년제에 묶여서 그대로 진급하다보니, 그 학생들은 학습부진아의 낙인이 찍힌 채 누적되는 학습량을 견디지 못해 포기 상태에 이르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발달 속도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라고 함께 입학하지만 1학년 때 벌어지는 학력이나 습관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공부를 힘들게 따라가는 학생은 자신감 결여로 자존감까지 낮아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유연한 입학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뇌의 발달 정도나 소근육의 발달은 재촉하거나 사교육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 아래서도 학년제에 묶인 학생들이 해당 학년의 기본 학력을 갖추지 못한 채 무조건 진급하면서 학습부진과 학습무기력증이 초래되고 있다. 교육복지 차원에서도 부진 학생을 돌보고 그들에게 맞는 정책을 입안, 배려하는 예산 지원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결과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복지다.

저출산 예방은 삶의 질 개선이 먼저다

지금 현재도 이러한데 그 나이를 한 살 더 아래로 낮춰 1학년이 시작된다면 그 시행착오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 5살 입학 연령 추진은 아동 발달 수준을 무시한 정책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을 향해 가지만 아동의 발달 속도까지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교육에 불을 지를 게 뻔하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와 관련이 깊다. 서로 비교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문화, 같은 노동이면 같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 풍토와 같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저출산 대책으로 더 우선해야 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주고 국가와 사회가 안전망 구실을 잘 해주는 풍토, 갑질로 누군가를 짓밟는 세상이 아니라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녀를 마음 놓고 낳아 기르는 인간적인 행복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절실한 대책은 국가에 대한 믿음과 자긍심이다. 정책보다 먼저 마음을 얻는 일이다.
장옥순 전남 담양 금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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