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첫발 딛는 대견한 제자들
면접장, 일하는 곳 찾아 응원
등 토닥이며 ‘늘 곁에 있을게’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2일. 대부분의 고3 교실은 떨리는 손으로 성적을 확인하는 수험생들과 배치참고표를 보며 제자를 어느 대학에 보낼지 고민하는 교사들의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모든 고3 교실이 같은 풍경이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 삼일공고 3학년 3반 담임 백승묵 교사는 오늘도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학생들의 취업처를 찾고 진학하려는 아이들의 입시지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취업 학생들의 사후지도를 나간다. 오늘은 지난 9월 반도체기업에 입사한 장은미 양을 만나러 수원의 W모 회사에 갔다. 백 교사는 수줍은 얼굴로 회사 앞에 나온 장양을 따듯한 미소로 맞았다. 회사 생활이 힘들지 않은지, 배우는 일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제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취업생들을 자주 찾아가는 편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학생당 6회의 사후지도를 하게 돼있어요. 교사 네 분이 팀을 이뤄 로테이션 방식으로 방문하죠. 한 회사당 2번 정도 다녀오는 편이에요. 방문 외에도 전화나 문자를 통해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요.”
-사후지도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근무지에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본인 동의 없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킨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월급이 밀리진 않는지,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 전반적 근무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교사들이 직접 나가 파악하는 거죠.”
-6회면 20명만 잡아도 보통일이 아니겠습니다.
“시간이 안 되면 수업을 바꿔서라도 사후지도는 꼭 가요. 자식 같은 학생들인데,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저희 입장은 이렇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반기지는 않죠. 업무에 지장을 주고 아이들을 자꾸 불러내니까 눈치 보여요. 그래도 회사에서 거부하지 않는 한 최대한 다녀오는 편입니다.”
-실제 부당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까.
“아직까지는 없었어요.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이의제기를 하고 시정되지 않으면 담임교사 직권으로 학생을 복교시킬 수 있어요.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업체 담당자들도 만나보면 최대한 학생들을 배려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고3 담임의 일상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인문계는 대학진학이 목표지만 특성화고 교사들은 취업과 진학 모두를 챙겨야 하니 아무래도 일이 많죠. 2학기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취업준비에 들어가요. 자기소개서 쓰는 법부터 면접 준비도 시키죠. 여기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수시, 정시, 추가모집까지 챙기고 나면 담임들의 1년 농사가 끝나는 셈이죠.”
-면접이나 자소서 준비도 직접 도와주나요.
“교육과정에 진로수업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인터넷강의나 방과후 수업을 통해 추가지도를 해요. 그래도 가장 큰 건 담임지도죠. 학생들이 자소서를 준비해오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부터 형식까지 꼼꼼하게 봐줘요. 면접 날이 잡히면 제 차에 태워 동행하고요.”
“자식 같은 제자들…성실히 사는 모습이 보람”
복교도 경험…실패라 생각않도록 격려
사회에선 '인사' 중요…기본부터 철저
고졸 취업자에 대한 인식 개선됐으면
백승묵(사진) 교사는 2일 오전에도 제자의 면접 길에 동행할 참이었다. 업체와 일정이 안 맞아 다음 주로 미뤄졌지만 그는 제자들을 면접 길에 홀로 보낸 적이 없다.
-혼자 다녀와도 될 텐데, 같이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심리적인 게 크죠. 혼자 갈 때보다 선생님이랑 같이 가면 학교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낯선 장소에서 긴장하기 쉬운데 선생님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푸근함과 든든함을 주는 겁니다. 면접 후에는 격려하고, 실수했다면 다음번에 잘하자고 추슬러 줘요. 그런 과정에서 학생들도 학교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교사들도 보람을 느끼죠.”
-학생 개개인을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겠습니다. 노하우가 있습니까.
“학기 초 기초조사를 통해 가정환경이나 성격을 파악해요. 다소 공격적인 학생, 온순한 학생, 꼼꼼한 학생 등 성향에 따라 취업처를 매칭해요. 가령, 덜렁덜렁한 성격인데 꼼꼼함을 요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적응이 어렵지 않겠어요? 또 학교 취업지원관과 직업교육부의 도움을 받거나 각종 취업사이트를 수시로 보면서 정보들을 안내해줘요. 다년간의 경험으로 쌓인 제자들의 잘 쓴 자소서를 ‘족보집’처럼 모아 보여주기도 하고요.”
-올해 취업상황은 어떻습니까.
“저희 반 33명 중 75%가 취업에 성공했어요. 나머지 10명 정도는 계속 취업처를 알아보거나 진학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희 반은 화공과여서 주로 제약회사로 많이 가고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공기업으로도 많이 진출합니다. 대학에 합격했어도 취업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나고요.”
-이유는 뭘까요.
“소위 말해 취업마인드가 강한 아이들이죠. 요즘 대학 나와도 취업문이 좁잖아요. 오죽하면 4포세대, 5포세대란 말이 나오겠습니까. 일반고 나와서 전문대 가는 것보다, 일찍 취직해 돈 벌면서 야간대학이나 사내대학을 다니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이득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아는 거죠.”
-모두 잘되면 좋겠지만 잘 안 풀린 경우도 있을 텐데, 어떤 마음이 드나요.
“내성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은 아이들이 면접에서 낙방하는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다 나가고 자기만 남았으니 심리적으로 쫓기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신경이 많이 쓰이죠. 어떻게든 빨리 길을 터주려고 노력해요. 학교에만 묶어놓는 것보다 롱런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까.
“그런 걸 ‘복교’ 한다고 하는데요, 10명 중 1~2명 정도 있습니다. 보수가 안 맞거나 직장 내 텃새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좋을 것 같아서 갔는데 막상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고요. 아직 애들이잖아요,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복교의 경험도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래도 가능하면 복교하지 않도록 적성과 흥미에 최대한 맞는 회사를 찾아주는 게 저희의 역할입니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텐데, 어떤 말을 해주나요.
“대부분은 그런데 오히려 강해져서 오는 애들도 있어요. 자존감이 떨어진 학생은 많이 보듬어주죠.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인데, 내 자식이 나가서 잘못되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냐며 인간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진정이 되면 왜 복교했는지 생각해보고 더 버텼으면 어땠을지, 참을성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보고…. 다각적으로 생각해보게 도와줍니다.”
-다정하신 편인가봅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기본에 엄격한 편이죠. 요즘은 인사습관을 길러주고 있는데요, 보통 수업에 들어가면 교사가 교탁에 서고, 반장이 일어나서 인사하잖아요. 저는 교실에 들어가면 전체 학생이 모두 일어나요. 인사 할 때도 한명이라도 저를 안보면 다시 하라고 해요. 인사의 기본 3단계가 아이컨텍, 인사, 다시 아이컨텍인데, 이런 훈련을 학교에서부터 미리 시켜주는 거죠.”
-사회에서 중요한 소양을 미리 길러주는 거군요.
“네. 저는 반성문을 써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을 봐요. 맞춤법이 맞는지, 글을 너무 위쪽으로 쏠려 쓰지는 않았는지 구도와 줄 간격도 보죠. 요즘 자필 자소서도 많이 받잖아요. 엉망인 자소서를 회사가 눈여겨볼까요? 당장은 엄하고 힘들어도 결국 본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도 따라와 줘요.”
-가장 보람됐던 기억은 언제입니까.
“가출로 결석을 며칠째 하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학부모도 만나고 잠복근무도하면서 어떻게든 찾으려던 중 친한 친구로부터 ‘남문 이모네 떡볶이’에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그길로 달려가 아이를 어깨에 들쳐 업고 학교로 왔죠. 밤늦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서서히 마음을 열었죠. 나중에 ‘선생님이 계셨기에 제가 졸업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돈으로 바꿀 수도 없죠.”
-특성화고 교사이기 때문에 겪는 서글픔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채용공고를 보고 업체에 물어볼게 있어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인사과장이 삼일공고는 너희 학생들 우리 회사에 보내려면 얼굴이라도 비춰야지, 전화만 달랑 해서 이런 걸 묻느냐고 비아냥대더군요. ‘갑질’이었죠. 자존심 상하고 서운했지만 그러려니 해요. 이런데 마음 상하면 일 계속 못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특성화고 고3 담임은 ‘만능’이군요.
“만능까지는 아니고요.(웃음) 올해 15년차인데, 교사는 정말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어요. 처음 부임했을 땐 가르치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은 기본이고 부수적인 일도 잘 해내야 인정받는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고3 담임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성과를 내야 하니 부담이 크죠. 그래도 힘들고 지난했던 과정을 함께 겪은 후 사회로 첫 발을 내딛은 제자들이 성실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이만한 보람이 없어요.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고 졸업 후에도 그 길을 뒷받침해주는 일, 멋지고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특성화고 교육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회적인 인식과 합의 부족입니다. 아직 고졸 취업자에 대한 가치를 높이 사주는 업체는 많지 않죠. 그런데 정부는 무조건 돈으로만 지원하려 합니다. 학교와 업체, 정부가 모두 따로 놀고 있어요. 회사와 학교의 연계를 더 넓히고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가 성과 위주로만 평가되는 현실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나요.
“겉으로는 엄하고 때로는 차갑지만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묵묵히 챙겨주는 그런 교사요. 선생님이 너무 유하면 아이들은 자꾸 풀어져요. 처음에는 싫고, 힘들지 몰라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선생님이 제일 도움이 됐다’, 이렇게 마음에 남는 선생님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김예람 yrki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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