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연구물도 방치되면 의미 없어…현장 활용도 높일 것"

2016.04.22 12:30:46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연구보고서 수요 맞춰 재가공
현장교사 참여로 현장성 개선

4차 산업혁명…교육혁신 필요
인간 고유의 창의·인성 길러야

교원이 ‘가르치는 보람’ 느끼게
사회 인식 개선할 정책 구현에 최선


"좋은 연구 산출물도 도서관이나 창고에만 놓여 있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김재춘(53)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은 19일 한국교육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구결과의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일의 교육R&D기관으로서 연구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널리 쓰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보고서를 수요자의 관심과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고, 연구 과정에 교원의 참여를 늘려 현장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김 원장은 알파고 대국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성과 인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미래사회에 적합한 교육모델을 개발·보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자유학기제에 대해서는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며 ‘자유학기제 전도사’로서 소신을 피력했다.

김 원장은 현 정부의 핵심 교육 브레인으로 통한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 행복교육추진단 위원으로 참여해 자유학기제 등 현 정부 교육정책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 취임 석 달째를 맞고 있는데, 소감과 앞으로 계획은.

"대학 4학년 때 연구실습으로 교육개발원에 온 이후 연구, 자문, 편집위원 등 여러 일을 하며 친근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기관장을 맡게 돼 친정 같은 편안함과 함께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교육개발원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맞고 있다. 우선 충북 진천으로의 청사 이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해 재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 또 알파고 이후 제4차 산업혁명이 굉장히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만큼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교육모델도 개발해야 한다"

- 취임사에서 아무리 좋은 연구결과물을 생산해도 활용하는 사람이 적거나 만족도가 낮다면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수요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방안이 있나.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연구 산출물도 도서관이나 창고에만 놓여 있으면 의미가 없다. 연구보고서는 현장 교사나 정치인, 언론인 등이 읽기에 너무 두껍다. 활용도를 높이려면 활용주체들의 관심이나 상황에 맞게 재편집, 재구성해서 제공해야 한다. 또한 현장성 있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연구, 협의, 검토 과정에 교사들을 적극 참여시킬 생각이다."

- 올해 말 예정돼 있는 청사 이전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건물이 전체 5층인데 5월 정도면 골조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12월 5일 준공 예정이다. 우선 청사를 잘 짓고, 공간을 잘 배치해 의미 있게 활용해야 한다. 연구원의 정주 여건도 중요하다. 가정이 평안해야 연구도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이전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새 건물에서 제2의 창립을 한다는 각오를 갖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자고 강조하고 있다."

-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에서는 약점을 많이 지적한다. 기대치가 높은 측면도 있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도 많다. 해외에서는 우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워낙 많아 인력이 부족할 정도다. 얼마 전 이도훈 주 세르비아 대사를 만났는데 한국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 한 사람만 와서 이야기해도 모든 신문에 날 정도라더라. 하지만 우리도 기존 교육체제로는 세계를 이끌어갈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여기서 인성은 좁은 의미가 아니고 기계성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성, 사회성, 협동성 등의 역량을 의미한다. 이를 길러주는 교육을 시범적으로 해보는 게 자유학기제다."

- 요즘 자유학기제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어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도농 간 격차 등 여건 미비와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자유학기제는 크게 세 가지 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수업방법의 변화다.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 듣고 필기하는 기존 수업 방식을 거꾸로 수업, 문제해결학습, 협동학습, 실험·실습 등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학기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두 번째는 학생의 꿈, 끼와 관련되거나 사회적으로 유행하는 주제를 선택해 활동하는 선택활동이다. 세 번째가 진로체험이다. 외부활동이어서 학교 안에서 하는 다른 활동보다 더 부각되고 있지만, 실제 중요성은 수업혁신이 60~70%, 선택활동은 20~30%를 차지하고 진로체험의 비중은 10%정도다. 진로체험은 학기당 2회가 권장되는데 4시간씩 가도 한 학기 8시간 밖에 안 된다. 자유학기제의 핵심은 수업을 학생 참여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 자유학기제가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평가하나

"그렇다. 올해가 4년차인데, 1~3년차 모두 교사, 학생 평가에서 4점 이상이 나왔다. 학부모 평가에서도 3.67~3.8 이상 나온다. 다른 정책에 비해 상당히 높은 점수다. 학력 저하 우려가 있는데, 학력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강의내용을 외워서 80점 받던 학생이 참여형 수업 후 75점을 받았다고 학력이 떨어진 것인가. 점수는 낮아졌어도 학력은 올랐을 수 있다. 자유학기제 시행 후 성적이 올랐다는 보고도 있다. 또 학교에서는 혼자 공부하지만 직장에 가면 당장 팀으로 해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협동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이미 공동학습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피사)에도 2015년부터 한 문제를 두세 명이 함께 푸는 협업능력을 평가하는 문항이 추가됐다.

- 교육정책 중 가장 중요한 현안이 무엇이라고 보나.

"학업성취도면에서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사실상 항상 1등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느끼는 만족도나 행복감은 너무 낮다. 이런 상태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없다. 꿈, 끼를 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드(TED)에서 3억 뷰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교육학자 켄 로빈슨(Ken Robinson)은 저서 ‘학교혁명(원제: Creative Schools)’에서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학교가 ‘창의적 학교’고, 그렇게 바꿔가는 게 ‘학교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학교는 풋볼에만 관심 있는 학생에게 ‘풋볼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수학을 공부하라’고 하지만, 성공한 학교는 풋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풋볼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향상시키는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공교육을 이렇게 바꾸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가 자유학기제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이제는 기계가 많은 일을 풀어준다. 창의성, 감성, 사회성 등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 KEDI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교육정책연구의 글로벌 리더로서 KEDI의 역할과 앞으로 계획은

"교육개발원은 법적으로 유일한 교육R&D기관으로서 교육에 관한 전체적인 것을 관장한다. 1970년대 초부터 경제 분야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연구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다. 교육개발원은 크게 두 가지 사업 분야가 있다. 하나는 선진국 모임인 OECD 에듀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와 협력하는 ODA사업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우리의 현재에도 관심 있지만 과거 경험을 더 배우고 싶어 한다. 현재를 따라오기엔 인프라나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는 적은 돈으로도 큰 투자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교육개발원은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큰 행사를 개최하거나, 세계 여러 나라의 교사를 지도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그래서 국내보다 외국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교육개발원은 국제기관과 다양한 협력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14년에는 세계은행(World Bank)과 공동으로 국제 세미나를 열어 국내외 교육전문가들이 교육 혁신 방안을 협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가 함께 추구할 교육 아젠다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내년에는 아셈(ASEM) 교육장관회의를 개최한다.

- 현장 교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르치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교원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교사에게 해선 안 될 행동을 한다. 이는 특정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사회 전체가 통렬히 반성해야 할 문제다. 정부는 교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교원지위법을 개정하고, 교원치유센터를 적극 추진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의 노고를 전 국민이 이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기관장으로서 정책적으로 구현하도록 노력하겠다." 

▶ 김재춘 원장 약력
▲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육학 박사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비서관 ▲전 교육부 차관
강중민 기자 jmkang@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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