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울고 웃은 40년, “참 행복했어요”

2016.06.09 16:23:58

<사제동행>



이양순 경기 행남초 교장, 제자 35명 이야기 펴내
가슴 뭉클한 사연, 동화 같은 전개, 직접 그린 삽화
“배움은 마음 열려야 시작, 내 얘기에 위안·용기 얻길”


순겸이는 고집과 자기 의견이 뚜렷하지만, 말로 잘 표현하지 않는 어려운 아이였다. 나의 첫 제자 순겸이는 내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있어, 아이들마다의 개인차를 인정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과 개인적인 친밀감을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주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속삭여준 아이다. ‘선생님, 서두르지 마세요.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요.’ <‘순겸아, 미안해’ 중에서>

오는 8월 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양순 경기 행남초 교장.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학생을 만났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제자 한 명, 한 명과 함께한 시간, 추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논두렁을 따라 출근하는 선생님의 옷이 젖을까봐 낫으로 풀을 베던 승도, 어른의 욕심과 조급증이 아이를 힘들게 한다는 걸 알려준 순겸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이 교장은 마음을 주고받았던 제자 35명과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담은 ‘나를 키운 아이들’을 펴냈다. 그는 “그 옛날, 그 시절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함께 한 이야기를 통해 ‘애정을 쏟으면 아이는 무조건 변화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를 키운 아이들’은 단편 동화 여러 편을 묶어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선생님 눈병이 걱정돼 삼삼오오 힘을 모아 캔 쑥을 건네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피어난다.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비뚤어졌던 아이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선생님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안도하고, 불의의 사고로 아끼던 제자를 떠나보내야 했던 선생님의 절절한 이야기는 눈물짓게 만든다. 여러 출판사의 출간 제안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교장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만족하려다 주변의 권유로 출간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글을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하다 힘이 들 때면 동네 도서관에 간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책을 뒤적이면서 방법을 찾곤 했다는 이야기였죠. 제자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같은 처지의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요.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책의 삽화도 이 교장 작품이다. 교대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책 출간을 위해 학교를 방문했던 출판사 관계자가 1층 현관을 가득 채운 이 교장의 그림을 보고 제안했다. 그는 “평소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도화지에 옮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교사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강조한다. 비록 과거와 달리 학교가 많이 각박해졌지만,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 아이들에게 존재감 있는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성애를 예로 들었다. 자식에게도 정성을 기울여야 애정이 생기는 것처럼 학생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이 교장은 ‘선생 할 맛’을 느끼게 해준 동욱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욱이는 자폐증을 앓았다.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는 아이를 위해 수업 조교의 일을 맡겼다. 어려서부터 기계를 잘 만졌다는 학부모의 이야기에 힌트를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욱이는 교내에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대단한 아이로 알려졌고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커졌다. 학교생활이 즐거워진 동욱이는 각종 과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능성을 드러냈고, 관련 대회에 출전해 상까지 휩쓸었다.

이 교장은 “최근 취업 시험을 준비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배움은 마음이 열려야 비로소 시작된다”며 “교사는 머릿속에 지식만 집어넣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본성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교장에게 교직 생활은 ‘행복’ 그 자체다.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 속에서 행복했고, 교감일 땐 후배 교사들의 수업 코칭을 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부모교육을 하면서 또 한 번, 행복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각박해진 학교 안에서 무기력해진 후배 교사들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느낀다. 아이들 속에서 행복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후배 교사들이 힘을 얻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는 이유다.

그는 퇴직 후에도 교육자의 삶을 이어갈 계획이다. 독일 대안교육인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이 교장은 “학교는 떠나지만, 몸이 자유로워진 만큼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 기부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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