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 그 한여름 밤의 꿈

2004.12.10 18:18:00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 부부에게 고민거리 하나가 생겼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린 휴가를 올해에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번 휴가는 사정으로 이틀밖에 주어지지 않아 특별히 계획을 세울 만한 게재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이번 휴가는 조용히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간직해 주는 데는 시간과 돈이 중요하지 않다며 나를 설득시켰다. 아내와 나는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휴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에게 농촌 체험 형식의 색다른 방학을 경험케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사는 이곳 동해안은 해수욕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으레 아이들의 피서지는 바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 또한 다른 곳으로 피서를 간다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 했다. 1박 2일간의 휴가를 며칠 앞두고 나는 인터넷과 책자 등을 활용하여 우리 고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지역을 샅샅이 알아보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곳이 아우라지 뗏목축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정선이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우리는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강릉에서 자가용으로 약 1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이 정선군 북면이었다. 민박집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머물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간신히 찾은 곳이 어느 산골짜기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처음에는 그 노부부는 집이 누추해서 안 된다며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겠노라고 내가 고집을 부리자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그리고 사용하고 있지 않은 방 하나를 내주었다. 노부부는 자식들 모두를 출가시키고 선산이 있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하였다.

방문을 열자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 냄새 때문에 아이들은 선뜻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우선 방안을 환기시키기 위해 방문 모두를 열었다. 그리고 방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기를 반복하였다. 옆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노부부는 민망한 듯 멋쩍게 웃고만 있었다. 어느 정도, 청소가 된 상태에서 가져 온 짐들을 하나 둘씩 풀어놓았다.

저녁때가 되자,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밖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당신의 손자, 손녀가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우리 두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얘들아, 할애비와 옥수수나 따러가자."
아이들은 심심하던 차에 할아버지의 그 다음 말이 나오기도 전에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도시 생활에 찌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 아이들에게 있어 방학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 생활과 숙제로 지친 하루를 보내야 하며, 인터넷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할아버지는 모기를 쫓기 위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러자 할머니는 곳간에서 손수 지어 수확한 감자를 가지고 와 모닥불에 넣었다. 할아버지가 다 구워진 감자를 밖으로 꺼내놓자 아이들은 혹시라도 새까맣게 탄 감자를 강제로 먹으라고 할까 봐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옆에서 아이들 표정을 살피던 할머니는 뜨거운 감자를 양손으로 바꾸어 가면서 껍질을 벗겨냈다.

잠시 후, 노랗게 익은 감자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할머니는 옆에 앉아 있는 작은 녀석의 입에다 갖다 대었다. 얼떨결에 감자를 받아먹은 작은 녀석이 입안이 뜨거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감자를 먹기 전에 온갖 인상을 썼던 작은놈의 얼굴 위로 갑자기 화색이 도는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딸 또한 동생의 그런 모습에 군침을 여러 번 삼켰다. 그제야 아이들은 감자 맛을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감자를 꺼내 놓자마자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뜨거운 감자를 양손에 들고 쟁탈전을 벌였다. 감자를 먹고 난 후, 아이들은 얼굴과 입 주위에 묻은 검정 칠을 보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추며 정선아리랑 가락을 구성지게 불렀다. 그러자 아이들도 흥이 겨워 아리랑의 후렴을 할아버지를 따라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소를 짓는 노부부의 얼굴에서 간헐적으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두 손을 꼭 잡고 마루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황혼이야말로 해질녘 서쪽으로 지는 노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한여름 밤의 꿈은 모닥불의 연기처럼 사라져 갔지만 그 꿈을 피우기 위한 노부부의 사랑과 관심은 우리 가족의 마음에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아우라지 뗏목축제를 보기 위해 일찍 서둘러 노부부의 집을 나섰다. 헤어지기 아쉬운 듯 노부부는 두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아이들 또한 노부부와 정이 들었는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차창을 내다보며 노부부의 모습이 희미해져 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 아이들은 가끔 집에서 정선아리랑을 흥얼거리곤 한다. 아마도 그건 노부부와 함께 한, 정선에서의 여름 밤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고자 하는 몸짓인지 모른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이 정선아리랑, 그 한여름 밤의 꿈이 있었기에 덜 덥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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