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쓰는 편지> 사랑하는 아내에게!

2005.02.06 00:09:00


아내여! 당신, 이제 미소 한번 지어보구려.

오늘도 하루종일 김치가게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곤히 잠든 당신의 볼에 입맞춤을 해봅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당신에게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오. 문득 당신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 어떤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잠들기 바래요.

결혼식 날, 그 어느 신부보다 아름다웠던 당신은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 생각했소. 이제 서른 중반이 된 당신의 눈가에도 어느새 잔주름이 하나 둘씩 생겨나는 것 같소. 당신도 늙어 가는구려. 화장품 값이 비싸 "당신은 화장한 얼굴보다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라는 말로 변명만 늘어놓았던 지난날의 행동들이 요즘 들어 그것이 얼마나 구차한 변명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요즘 들어 당신의 미소를 본 지도 오래된 것 같소. 항상 당신의 미소가 있기에 힘들어도 힘을 얻곤 했는데 최근 들어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당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무어라 할 말이 없소. 문득 당신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나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니 남편으로서 아니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자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소. 당신의 미소를 찾아주기 위해 오늘도 당신 주위에서 서성거려 봅니다.

지난 달 형님의 사업실패로 인해 은행으로부터 형님의 은행 부채 전액인 오천만원을 보증인인 내가 떠맡게 되던 날, 당신은 창가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눈물만 훔치고 있었소. 믿었던 형님의 실패에 괴로워하자 오히려 당신은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위안을 해 주었소. 그 이후로 매일 늦게까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나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소.

다음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나에게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들 하나 하나를 털어놓았을 때는 차마 당신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소. 그리고 방바닥에 꺼내놓은 통장들과 아이들 학원비를 포함한 한달 생계비를 적은 가계부를 살펴보는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소.

교사인 나의 박봉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당신은 내 앞에서 불평 한마디 털어놓지 않았소. 그리고 앞으로 살아 갈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당신의 모습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얘기하는 당신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소.

적금을 해약할 때마다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는 당신의 말을 듣는 순간 형님에 대한 미움이 증오로 바뀌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소. 결혼하여 지금까지 계획해 둔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당신의 마음은 아마 이보다 더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소.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무엇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었던 것 같소. 고 3 담임이라는 이유로 평일에는 밤 열 한시, 주말에는 오후6시, 휴일에는 오후 5시에 귀가하는 나에게 불평 한마디 털어놓지 않았던 당신이었소. 그러고 보니 고 3 담임을 연임하면서 우리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가 본 기억도 없었던 것 같소.

작년에 막내 ‘기범’이가 학교에서 가족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백일 때 찍었던 가족 사진을 보냈다는 말을 하면서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던 당신의 모습도 떠올려지는군요. 그나마 한 달에 한번 쉬는 일요일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잠만 자고 그 다음 날 출근하는 나에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해 주었던 당신. 항상 내 앞에서 미소만 지어 보이기에 당신에게는 그 어떤 아픔이 없는 줄만 알았소. 지금도 의식을 잃고 뇌사상태에 있는 오빠의 생일 날, 창 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당신 모습이 생각나는구려.

결혼 한지 십 년이 지난 지금, 지난 온 날들을 돌이켜보니 후회되는 일들이 더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내 자신이 그 동안 가정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오. 지금까지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내가 직장 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오. 항상 내 곁에는 축 늘어진 어깨를 일으켜 세워주는 당신이 있고, 재잘거리는 두 아이의 미소가 있기에 그래도 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당신과 함께 한 날들은 행복 그 자체였던 것 같소.

나 또한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오. 내 당신을 위해 지금까지 한 일은 없지만 당신이 자식과 내게 베푼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으며 살아 가리오.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될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나가리라.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더 많은 우리이기에 이 시련은 어쩌면 좀더 나은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온갖 고생을 다하는 당신에게 무어라 할 말은 없지만 내 당신의 잃어버린 미소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하겠소. 끝으로 여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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