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졸업식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축소되고 간소화되었지만 ‘졸업’이라는 말 자체에 왠지 무게가 느껴져 졸업식장에서는 숙연해진다.
졸업식의 방법이 다양해졌지만 아직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의 식사나 내빈들의 축사가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식사나 축사를 맡은 분들은 교정을 나서는 졸업생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가슴 속에 간직할 말을 찾느라 고심을 한다.
졸업식을 회고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손 끝, 입 끝, 거시기 끝'을 조심하라는 축사를 한 교장선생님이 있었단다. 물론 남자고등학교의 졸업식이었다지만 엄숙한 졸업식장에서 ‘거시기’라는 말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당시 졸업생들은 30여 년이 지났어도 웃음바다였던 졸업식장을 생각하며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되새길 테니 분명 남보다 몇 걸음 앞서갔던 분이다.
오늘 내가 그런 자리에 있었다. 1906년에 개교해 백주년을 1년여 앞두고 있는 내 근무처 회인초등학교도 오늘 졸업식을 했다. 농촌인구 감소로 졸업생이 13명뿐인 조촐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충북도의회 정상혁 의원님이 축사를 했는데 ‘정직한 사람이 되자,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자’라는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얘기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식장에 있던 몇몇 어린이와 어른들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의원님의 고향은 지금도 오지마을인 쌍암리이니 예전에는 오죽했을까?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입학을 했지만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돼 점심시간이면 슬며시 밖으로 나와 펌프 물로 배를 채웠단다.
그때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가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는데 과수원을 지날 때마다 허기진 배가 복숭아를 따먹으라고 유혹을 했단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지게질을 하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복숭아를 따먹을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당시 부모님을 속여 돈을 타내던 친구들은 지금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며 결국 정직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진리를 알려줬다.
의원님은 화분에 꽃씨를 심고 열심히 거름과 물을 주면 주인을 위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듯 부모님이나 선생님, 세상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줬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우리는 감화를 받는다. 훌륭한 사람들이 즐겨 말했던 명언이나 고사성어만 좋은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평범한 말이더라도 전달방법이 바르면 졸업식장의 식사나 축사로 빛날 수 있다.
‘거시기’라는 말을 졸업식장에서 사용한 교장선생님의 용기 있는 행동이나 불우했지만 떳떳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농촌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의원님의 몸에 밴 신념이 많은 사람들에게 졸업식장을 장식한 꽃보다 인간이 더 아름답다는 걸 깨우치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