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습관(習慣)'은 길들이기 나름

2005.03.24 09:12:00

3월 초.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녀석에게 큰 고민거리 하나가 있었다. 그 고민을 가져다 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올해 새로 전입오신 여선생님으로 교직 경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교육관은 투철한 분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매일 숙제로 일기를 써오게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기의 분량이었다. 공책 20줄 이상 채우지 못하면 숙제를 해오지 않은 걸로 간주하여 벌을 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 일기에 상당히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되며 그날 있었던 일을 주제로 하여 꼭 분량을 채워오라고 하였다. 만약 쓸 내용이 없으면 책을 읽고 난 뒤, 독후감을 적어오라고 하였다.

물론 나로서는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으나 평소 책읽기와 글쓰기를 싫어하는 막내에게 있어 선생님의 과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극성맞은 몇 명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일기 때문에 학원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며 숙제를 줄여 달라는 항의 전화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학부모를 설득시켰다.

“부모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 문화에 지나치게 빠져 있어 책을 읽지도 않으며, 특히 모든 것을 컴퓨터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글씨를 바르게 쓰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이들이 짜증을 많이 내겠지만 언젠가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원 숙제보다 학교 숙제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주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그랬다. 아들 또한 처음에는 짜증을 내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일기장을 펼쳐놓고 한참을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연필만 굴리곤 하였다. 어떤 때는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책 내용을 그대로 베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의 일기는 오로지 20줄 이상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지 내용은 없고 큰 글씨만 눈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이것을 지켜보면서 내심 담임선생님이 무언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의구심까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책상 위에 펼쳐진 아들의 일기장을 본 순간부터였다. 일기장 위에는 빨간색 볼펜으로 선생님이 쓴 글들이 여기저기 적혀져 있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쓴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손수 수정을 해주었으며, 일기 내용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적어 두었다. 말하자면 일기장을 통해서 아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들에게 ‘일기 쓰기 힘들지 않니?’ 라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을 하였다.

“아빠, 일기 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세요? 그리고 오늘은 담임선생님이 일기장에 어떤 이야기를 써 주실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어제 일기장에는 담임선생님이 저보고 잘 생겼다고 써 주셨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처음에는 짜증을 내겠지만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이 생각이 났다. 무조건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동기 유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들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시간이 나면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오락을 즐기던 녀석이 잠자기 전에 꼭 책을 읽고 자는 모습을 보면서 습관은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직은 서투른 점이 많지만 문장구사능력, 맞춤법, 띄어쓰기 등이 이제는 제법이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의 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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