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러저런 학교 행사가 참 많다. 더구나 운동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니 마음만 바빴다. 학교를 옮기고 안착도 덜된 상태에서 아이들마저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하루였다.
오후에 비가 온다기에 전체 입ㆍ퇴장 연습이 끝나자 바로 동학년 단체경기를 연습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여럿이 함께 마음을 합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이해하고 격려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탓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연습시간보다 더 많았다. 몇몇 아이에게서는 가르치는 교사의 열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시간 내내 저럴 수 있을까도 생각했다. 수업시간에는 운동장만 쳐다보며 운동회 연습 언제 하느냐고 물어대던 것을 어쩌면 저렇게 쉽게 잊을까도 생각했다.
행사도 많은데 되도록 종목 담당자가 요령껏 지도를 해 수업희생을 막을 필요도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니기에 내가 맡은 고학년 청백계주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보다 미리 점심을 먹으려고 급히 급식소로 가다보니 급식소 입구에 휴지가 여러 장 흩어져 있어 보기가 흉했다. 마침 급식소에서 나오는 아이가 있기에 휴지 좀 주우라고 했더니 대뜸 “내가 안 버렸는데요.”라며 그냥 지나친다. 엉겁결에 뒤통수를 한 대 맞았지만 그 아이만 탓할 수도 없었다. 그동안 그 자리를 지나친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점심을 먹고 잔반에 남은 음식을 처리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잔반처리대 위에 요구르트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금방 음식물 속으로 들어갈 것 같아 앞에 있는 아이에게 “얘, 요구르트 좀 치워야겠다.”고 했더니 “내거 아니 예요.”라는 대답이 메아리로 돌아왔다. 멀리 사라지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잘못된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운동장에 청백계주 선수들을 모아놓고 첫 연습을 하게 되었다. 배턴터치 요령을 지도하는데 아이들은 지도방법이 잘못되었다며 불만이다. 지도하는 사람에 따라 배턴터치 요령이 다를 수 있다며 이번 운동회에서는 선생님이 지도하는 방법으로 하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이들 표정을 보니 연습을 해봤자 능률이 오를리 없었다. 교실로 들여보낸 후 인터넷에서 배턴터치 방법을 찾아내 출력물을 각 교실로 돌렸다. 그제야 내가 지도하고자 했던 배턴터치 방법이 올바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어린 새싹들이 자기만 알고, 고집만 세고, 게을러터지고, 부정적이고, 의욕이 없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발 옆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보고도 내가 주우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인간미가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 봉사하는 사람을 길러내라는 게 사회의 요구다. 그런데 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봉사라는 건 스스로 우러나서 해야 하는 일인데 교육적으로 어려운 게 너무 많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이 아이들이 역군이 되었을 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지금의 상황을 학교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품안의 사랑이 클수록 아이들은 나태하고, 나약해진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충효예는 물론 근면, 검소, 인내를 배우던 밥상머리교육이 그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