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다른 사회

2005.05.09 08:24:00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을 맞아 여론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것 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게 네 가지 있었다.

첫째는 어린이 5000여 명을 상대로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70%가량이 '사랑한다', 20%가량이 '자랑스럽다', 8%가량이 '똑똑하다', 6%가량이 '착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국의 부모 1308명에게 '언제 자녀들이 미워 보이느냐?'를 조사한 결과 37.2%가 자녀들이 '거짓말 할 때', 36.5%가 '말 안 듣고 대들 때', 11.9%가 '공부, 취직, 일을 제대로 안하고 빈둥거릴 때' 가끔 미워 보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부모들이 '알면서도 속아주는 거짓말은 무엇인가?'를 조사해보니 '커서 효도할게요'가 45.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결혼하고 꼭 부모님 모시고 살게요'가 18.4%, '오늘 일찍 들어갈게요'가 11.2%, '참고서를 산다거나 학원 등록하게 돈 주세요'가 8.8%로 나타났다고 한다.

넷째는 부모들에게 '언제 자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는가?'를 물었더니 응답자중 절반이 넘는 62.8%가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해줄 때'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최선을 다한다. 서로 자신보다는 상대를 위해 산다는 착각도 한다. 그런데 항상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라는 톱니바퀴가 어딘가 서로 어긋난 채 돌고 있다. 어쩌면 서로의 '바람'이 다른 것이 문제다.

'사랑한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이고, '커서 효도할게요'는 자식이 부모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고, '커서 효도할게요'라는 말을 가장 불신할까?

왜 그럴까?를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답이 나온다. 말에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바쁜 일상을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기에 그저 지나가며 한마디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부모에게 '효도할게요'라고 말은 하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기에 실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게 한다.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어떤 일이든 다 해주려는 게 우리나라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런 부모의 끝 없는 사랑이 자식을 그르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걸 자기 자식을 교육하면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부모 또한 매우 적다.

품안의 자식임을 내세워 품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을 자식에게 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부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일을 만들며 뒷바라지에 열을 올린다. 자신들의 요구보다는 부모마음대로 이뤄진 것이기에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신록의 물결이 온 대지를 뒤덮은 5월이다. 아이들이 거짓말 할 때 미워하기보다는 거짓말 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맡겨보자. 어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기보다는 어른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행동하자. 부모와 자식 간에, 어른과 아이 간에 알면서도 속거나, 미안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게 꿈만은 아니길 바란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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