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05. 5. 7) 광화문에서 자살학생 추모제를 겸한 내신등급제 반대를 위한 너희들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너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특히 어버이날을 하루 앞 둔 부모님의 마음은 너무나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몰랐단다.
1989년 생(生)인 너희들 스스로를 저주받은 생(生)이라고 부르짖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행동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단다. 이 모든 것들이 기성세대인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단다. 아무튼 별탈 없이 끝난 것에 무어라 고마움을 표할 수가 없구나. 그런데 너희들이 보여준 행동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희들의 행동이 무엇을 말하려고 있는지를 교육 당국에 전해주는데는 충분했다고 본다.
성경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생활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단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사는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단다.
삶은 행복도 불행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것과 같은 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순종할 줄 알고 욕심 없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농부의 마음으로 생활해 가기를 소망해 본다. 사람은 사물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더 위대하게 보이는지 모른단다.
산다는 것, 살 수 있다는 것 이 모두가 목표가 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간은 각 자 나름대로 목표를 안고 태어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게 좋은 목표든 아니든지 간에 말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계바늘을 뒤로 늦춰서도 안되고 더욱이 앞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 그 순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여 설령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할지라도 그건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그래서 목표의 중턱에 <여유> 단어를 덧붙였는지 모른단다. 목표를 이루고 신이 주신 영원한 휴식을 얻으려 할 때, 우린 보람과 기쁨이 있어 행복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영원한 휴식은 좌절의 지옥으로 가는 길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제자들이 나에겐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아픔을 묻어 두고 생활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것 하나에 상처받고 마음 아파하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그리고 환경은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끔 고마울 때가 있단다. 매일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도 그래도 힘이 들지 않는 한가지 이유는 항상 나를 보면 밝게 미소짓는 너희들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너희들의 얼굴 위로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선생님 마음 또한 슬퍼진단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너희들의 대화 속에서 나름대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때가 있단다. 아마도 그건 기성 세대의 관점에서 너희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세대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단다. 이제는 너희들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 꾸짖기 전에 나 자신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너희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단다.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기성세대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무조건 잘못되었구나 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한번쯤 생각해 볼 줄 아는 마음 자세를 갖기를 감히 바란다.
1989년 생(生)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저주받은 생(生)이 아니라 어쩌면 축복 받은 생(生)인지도 모른단다. 자신을 불살라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아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환하게 비춰 줄 희망(希望)의 촛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