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의 허(虛)와 실(失)

2005.06.18 15:54:00

수행평가가 학교의 고사(考査)에 반영된 지도 벌써 십 년이 되어 간다. 발표 이후, 각급 학교에서는 수행평가에 따른 기준 안을 마련하여 적용해 오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을 해야 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학교 현장에서는 수행평가의 기준을 두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7월초 기말고사를 앞두고 대부분 학교에서의 6월은 예·체능을 포함한 모든 학과목의 선생님들이 수행평가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컴퓨터가 배치된 교실과 멀티미디어실에는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북적댄다. 특히 내신의 비중이 큰 2008학년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1학년 학생들의 태도는 진지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과목들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에 지필평가 70%, 수행평가 30%를 반영하는 것으로 비추어보건대 고사에 수행평가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만만치가 않다. 특히 실기를 반영하는 체육시간, 학생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기만 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운동을 수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학생들은 비지땀을 흘린다. 또한 실기를 반영하는 미술과 음악 교과의 경우 수행평가를 위해 과외 수업을 받는 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각 과목별 수행평가의 방법(서술형 검사, 논술형 검사, 실기시험, 실험·실습법, 관찰법, 토론법, 구술시험, 면접법, 자기평가 보고서법, 동료평가 보고서법, 연구보고서법, 포트폴리오 등)도 다양하다. 그나마 이 모든 방법을 섭렵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터넷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복사하여 제출한다는 사실이다. 매번 담당과목 선생님이 인터넷을 활용하되 참고만 해야 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학생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갈수록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런 식의 수행평가에 길들여져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출 기간이 가까워질수록 학생이나 선생님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일부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의 눈치를 살펴가며 수행평가를 하기도 하며, 하물며 다른 학생이 한 과제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학생도 많다. 결국 그런 학생들의 수행평가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또한 창의성과 독창성이 배제된 수행평가로부터 과연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간적 제약 때문이다. 학생들은 모든 과목(고등학교 3학년 기준: 12과목)의 수행 평가 과제물을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하며 선생님 또한 그 과제물에 대한 평가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과다한 잡무가 많은 선생님들이 수행평가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채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다양한 해결책(평가방법의 다양화, 반복평가, 동료평가, 평가기준의 개방, 채점훈련 등)을 모색하는 시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수행평가는 지필 검사처럼 나중에 한꺼번에 채점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할 때, 그리고 과학실험, 연극, 연주 등 실연을 평가할 때 관찰자는 수행이 전개됨과 동시에 관찰하여 채점하거나 기록해야 한다. 이 때, 관찰자가 중요한 행동의 일부라도 놓치게 되면 정확한 평정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세심한 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원평가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학생의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인 성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두고 학생이나 학부모는 교원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특히 수행평가의 채점은 평정자가 오류를 범하기 쉽다. 평정자의 편견이나, 일관적이지 못한 기준은 평정자가 동일 관찰내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명확한 채점기준표를 마련하여 학생들에게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행해지는 주먹구구식의 수행평가가 어쩌면 학생의 인지적인 영역인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능력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까 걱정이 앞선다. 대한민국 현 교육체제에 수행평가 도입의 적절성을 논하기 전에 이미 적용이 되고있는 수행평가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선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님 또한 무작정 어떤 과제를 주고 기간 내에 제출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방안과 충분한 자료, 참고문헌 등을 제시해 줌으로써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이 수행평가(遂行評價)가 학생이나 선생님에게 부담감만 안겨주는 고행평가(苦行評價)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고자료: 수행평가(遂行評價)의 이해>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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