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책속에서 만나는 그리운 어머니

2005.07.10 09:02:00

오늘은 본교에 내려가서 문예반 아이들과 1학기 문예반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두 시간 동안 후텁지근한 교실에서 글을 쓰는 내 기쁨을 아이들에게 열강을 했다. 더워지는 날씨에 잠 오는 이야기로 들렸을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 동안 ‘일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작품처럼 써 보자’고 강요에 가까운 수업을 진행했다.

글쓰기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온 아이는 미소까지 지으며 부지런히 메모를 하고 고개까지 끄덕여준다.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다른 학교 선생님은 인솔해 오신 아이들 곁에서 같이 수업에 참여해 주셔서 내겐 더 힘이 되기도 했다.

문학을 짝사랑하는 그 심정을 잘 알기에 같이 글을 나누고 좋은 표현 방법을 같이 배우며 문학이라는 씨앗을 아이들의 마음 밭에 심어가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있다. 시골 학교는 학생 수가 많지 않으니 3개 학교가 연합하여 계발 활동 부서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희망과 학교 실정, 지도 교사 등을 고려하여 찾아가는 수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책을 읽고 감동하며 나를 표현하던 글쓰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이었다. 선생님은 꼬박꼬박 일기장을 읽어주셨고 말이 없는 나의 모습을 읽어내시곤 했다. 일기장 속에서만은 여느 아이들처럼 활발하게 나를 드러내놓고 까불고 장난치며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아이였다.

아버지와 나를 두고 멀리 가신 엄마가 어쩌다 나를 만나러 학교로 찾아와서 주고 간 붉은 무늬 월남치마, 예쁜 손목시계를 받은 기쁨을 적었을 것이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보라고 주고 가신 엄마 얼굴이 찍힌 명함판 사진 한 장.

이제는 어디로 가 버린 지도 모르는 그 사진은 마음 한 복판에 새겨져서 눈만 감으면 영상이 그려지는 엄마 얼굴. 새엄마가 옷을 갈아입으라시면 그 사진을 몰래 주머니에 옮겨 담는 일이 참 어려워서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주춤거렸던 작은 소녀는 그 비밀을 오래 지키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날인가 새엄마가 빨래를 하려다가 찾아낸 사진 한 장으로 아버지와 싸우셨고 엄마와 몰래 만나는 일이 아주 나쁘다는 걸 작은 소녀는 알아버렸으니……. 숨겨 가지고 다니던 엄마의 사진이 공개적으로 방문 위 사각형 액자 속에 정식 사진으로 들어앉게 되었지만, 엄마를 몰래 만나는 일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급기야는 사춘기를 지나며 나를 찾아오는 엄마를 거절하고 말았다.

사진 속의 엄마는 날마다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가슴 속에 맺혔을 엄마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은 아픔이 되어 새엄마를 부정하고 사사건건 서운하게 생각하며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볼 수 없는 그런 불만과 슬픔이 나타나는 곳이 일기장이었으니, 그곳은 내 도피처였던 것이다. 엄마를 만나는 날은 집안이 편하지 않고 불안하니 찾아오시지 말라고, 나중에 커서 만나자고……. 그렇게 독하게 떠나보낸 엄마는 그 뒤로 찾아오는 일이 없었고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물질의 가난보다 더 지독한 것은 채워지지 못한 영혼의 가난이었다. 그 가난의 단추는 엄마에 대한그리움이란 것을 알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채워지지 못하는 그 빈 구석을 책과 일로 덮어보려고, 때로는 하나님을 엄마의 자리에 모셔놓고 위안을 받곤 했던 젊은 날.

이제 내가 그 어머니의 자리에 서서 엄마가 나를 찾아오던 나이를 지나니 다시 아픔을 느끼는 시간이 찾아와서 힘들게 한다. 오늘처럼 피천득님이 쓰신 <모정>을 읽는 날은 가슴 속에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서 40년 전 꼬마 소녀를 찾아오던 엄마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너머 달려가는 그리움의 날개는 워낙 커서 한 번만 퍼덕이면 엄마가 선물꾸러미를 안고 기웃거리던 초등학교 2학년 교실로 날아가 버린다. 왜 그 때 나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부둥켜안고 따라간다고 떼조차 쓸 줄 몰랐을까? 왜 한 번도 울며 매달리지 못했을까? 아니, 엄마라고 소리쳐 부르지도 못했을까?

그 단어는 슬플 때, 억울할 때도 부르지 못한 옹알거림일 뿐이었다. 그리움은 원망이 되고 슬픔이 되어 돌처럼 굳어 그곳에 단 한 사람도 초대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야했다.

피천득님의 <모정> 속에 들어가 나도 우리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읽고 또 읽어본다. 뛰놀다 들어오며 품에 안기고 싶은 엄마, 맛있는 간식을 사들고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 아이들과 싸우고 들어오면 내 편을 들어 응원해 줄 수 있는 엄마.

만약에 하나님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한 가지만 가지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를 가지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엄마의 딸로 한 1년쯤만 살아보고 싶다. 그게 너무 큰 욕심이라면 한 달만 엄마를 가지고 싶다.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 품에 안겨서 포근한 잠을 자고 싶다. 엄마의 젖 냄새를 맡으며 코를 박고 잠을 잘 수 있는 행복을 원하리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둘째 아이가 다섯 살 나던 해까지 젖을 떼지 못한 우유부단한 나였다. 휴가 나온 아들의 볼을 비비는 내 모습 속에는 아직도 삭히지 못한, 채우지 못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서일까? 아니 엄마의 모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자식을 과잉보호로 키울까봐 홀로 서게 하고 독하게 하는 일이 더 많았다.

엄마가 그리울 때, 특히 무더운 여름밤에 나는 피천득 님의 <모정>을 찾아간다. 거기에는 7월의 더움도 시원하게 해주는 엄마의 손부채가 있고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반짝이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포근한 품이 나를 감싼다. 구슬치기해 주는 엄마의 모습, 종아리를 때려놓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애틋한 어머니가 그리운 모습 하나도 잃지 않고 그 자리에 서 계신다. 어느 새 작가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되어있다.

세 번만 부르면 눈물이 나는 단어가 '어머니'라는데 내게는 아무리 많이 불러도 눈물이 안 나온다. 엄마에 대한 구체적 경험이 형상화 되지 못한 탓일까? 마치 구체물을 통해서 수개념을 익히지 못해 계산이 늦은 아이처럼.

무더운 여름밤, 어머니를 그리는 책 속으로 잠수하면 서늘한 그리움으로, 한 줌의 눈물로 모기를 쫓아주는 엄마의 손부채로 여름을 잊곤 한다. 더운 밤을 작가들의 엄마를 찾아 잠수한다.

여름밤, 책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흘리는 눈물은 내 영혼을 서늘한 지하 동굴로 안내한다.

-2005년 7월 8일 새벽, 피천득의 <모정>을 읽고-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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