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계곡은 다시 물소리를 내며 달린다. 비가 많이 내리는 이 무렵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계절은 고향을 찾듯 그 물길을 찾아 안개비를 만들고, 구름을 만들고 이내 바다처럼 물소리를 내며 귀를 후비며 달린다. 조용조용 낮은 음계로 봄날 철쭉을 피우던 그 시냇물이 아니다. 한 순간에 온 마을을 쓸어내릴 듯 폭우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이기지 못해 계곡은 숨을 할딱이며 거친 숨을 내쉰다.
내가 이 곳 분교로 도피하듯 찾아왔던 3년 전, 어찌 보면 나는 그 때 20여 년의 교직 생활의 위기를 안고 산 중으로 몸을 숨기며 나를 찾는 여행을 감행했었다. 학교 내부에서 겪은 인간적인 갈등을 치유하지 못해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기를 바라며, 그래도 아이들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아니 힘들게 얻은 내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라고 말해야 옳으리라. 소외된 아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 곳 분교장의 모습은 상처받은 내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가난한 아이들과 가정이 파괴된 아이들이 옴짝 못하고 엎드려서 슬픔과 아픔을 계곡의 물소리에 진초록 나무숲에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폐교 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은 채.
도시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사람보다는 자연의 숨소리가 더 가까운 일상 속에 오직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책 속으로 귀향하면서 내 영혼은 치유되기 시작했다. 내 아픔만큼이나 깊게 패인 아이들의 아픔을 보는 순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를 이끌어 간 것은 소로우의 <월든>이었다. 독학으로 여기까지 온 내 삶의 여정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는 목적의식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책이었다.
소로우는 내게 속삭였다.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자신 있게 꿈을 좇으라. 상상했던 삶을 살라.’고,
<월든> 속에 들어가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생기를 얻으며 다시 초임 교사 시절처럼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내 영혼의 차오름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2003년. 떠나갈 준비를 하던 아이들을 붙잡아 졸업을 시켰고 하나가 된 선생님들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매체에, 교육청에 알리며 각종 사업을 들여와서 학부모의 마음을 붙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소로우의 말없는 외침을 아이들에게 투사하며 아이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켜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책 속을 헤엄치는 지금의 삶을 지극히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제 이 아이들은 음악가를 꿈꾼다. 나도 아이들처럼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삶을 살라’는 소로우의 속삭임은 이제 현실이 되어 나를 인도하고 있다.
아이들도 학부모도 선생님들도 꿈꾸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섬머힐’ 못지않은 자연 속의 학교를 가꾸며 아이들의 희망을 피아골 계곡의 빠른 물살에 실어 세상으로 보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지치고 힘들어질 때, 나는 소로우를 찾아 <월든> 숲 속을 거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