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팔다니

2005.08.02 11:14:00


지금은 회사원이 된 내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하루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꺼내 놓고 "엄마, 이거 먹지 마 날짜 지난거야. 엄마 이거 버리든지 세수할 때 써요" 한다. 나는 "아깝게 무슨 소리냐? 아직 맛이 변하지 않았으니 먹을거야 그냥 놔 둬" 하고 옥신각신 싸우던 적이 있다.

엄마를 생각해 주는 녀석의 마음이 기특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요 며칠전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때문에 불쾌한 일이 있었다. 가족들을 이끌고 해수욕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김밥을 싸가서 맛있게 먹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가족 중 두살배기 아기가 배고파 보채기 시작했다. 우리는 휴게소에 들러 우유를 사 먹이고 어른들도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기 엄마는 재빨리 음식점과 편의점을 겸한 가게에서 우유를 사서 아기에게 빨대를 꽂아 주었고 어른들은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아기가 우유갑을 들고 왔다갔다 하며 우유를 먹는 것을 보며 오늘 있었던 해수욕장의 풍경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아기가 금새 밖으로 나가 놀아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나는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그 집 강아지와 한참을 놀다 들어갔다. 그러자 아기가 또 보채기 시작했고 이번엔 잘 먹으라고 우유를 젖병에 담아 주니 아기는 대번 얼굴을 찡그리며 내려놓는다. 아까는 몰랐었는데 우유를 젖병에 담을 때 '주르륵' 쏟아지지 않고 '뭉클뭉클' 쏟아지던 것과 빨대 끝의 우유를 맛보니 쉬다 못해 쓴 맛이 느껴졌다.

즉시 가게 주인에게 가져가 유통기한과 맛이 변해 버린 우유에 대하여 항의했더니 주인은 우유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방금 진열장에 넣어놓고 갔는데???" 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우리는 "그런 말은 백번 해야 소용이 없으니 이 갑에 써 있는 날짜를 눈으로 한번 보라"고 요구했다. 아기 엄마는 "날짜를 못 본 내가 잘못이지" 하며 상대하기조차 싫어했다. 내 눈으로 진열장의 다른 우유들을 다시한번 확인해 보니 신통하게도(?) 모든 우유들이 유통기한의 날짜가 안 보이게 진열돼 있었다.

처음 생산해서 유통기한을 정한 여유분과 유통기한으로부터 어제까지의 날짜를 계산해 보니 열흘도 더 넘은 우유였다. 마트나 슈퍼나 편의점 같은 가게들은 최근 날짜의 것을 뒤쪽에 놓고 지난 날짜의 것을 앞쪽에 놓는다고 한다. 그래야 앞쪽에 있는 묵은 것이 팔려나가므로. 아기엄마는 요즘 '식파라치'가 얼마나 무서운데 저렇게 한심하게 장사 하냐고 혀를 찬다.

주인의 무성의한 태도와 책임을 전가하려는 고전적인 방식은 손님을 더 화나게 만든다. 빨리 부주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게 줄서서 기다리더라도 손님이 많은 가게에 가서 음식을 사먹는게 확실하다는 말도 있다. 그 휴게소에 차가 정차해 있는 것을 자주 보지 못했던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장래를 위한 가장 훌륭한 투자는 어린이에게 우유를 마시게 하는 일’이라고 했으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하루 1ℓ의 우유가 정력의 비결’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몸에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하거나 설사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건강에 아무런 유익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어린아기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먹이도록 유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과감히 폐기해야 할 것이다.
최홍숙 청송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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