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찾아가는 곳이 있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싸인 도서관 주변의 자연 환경은 정신 에너지 충전은 물론 정서 순화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올해부터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학교에서도 월 1회 주5일 수업제가 정착되면서 도서관이 가정 경제의 부담을 덜어 주고 가족의 정신적 자양분을 축적할 수 있는 대표적 문화공간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주말이면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와 향학열에 불타는 젊은이들로 도서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인구 5만 명이 넘는 도시에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공공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린이 열람실의 경우, 기껏해야 50명 남짓 이용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의자가 부족해 차가운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이나마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주변에 도서관은커녕 변변한 책방마저도 없는 지역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주말이면 아이들과 시간 보낼 일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학교 공부에만 치중하던 청소년들도 도서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화두는 대학입시 논술이다. 2008학년도 대입부터 논술이 주요 전형 요소로 부각되면서 독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7학년도 고교 1학년(현재 중 2학년)부터는 독서결과가 학생부 비교과 영역에 기록될 예정이다.
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독서 수요에 비해 도서관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전체 도서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도서관은 열악한 시설과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할 공공 도서관의 현실을 살펴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현재 전국에 있는 공공 도서관은 460여 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공공 도서관 한 곳의 사용 인구는 10만 명. 핀란드 3200명, 독일 3900명, 덴마크 4500명, 미국 2만6000명에 비하면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지난해 정부가 지원한 공공 도서관의 도서 구입비는 총 134억 원으로 미국에서 한 대학이 사용하는 연간 도서 구입비보다도 훨씬 적었다 한다.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빌 게이츠 회장은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제도권 교육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읽으며 지식을 쌓고 상상력을 키웠다는 얘기다. 빌 게이츠가 태어난 마을에 공공 도서관이 없었다면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나 게이츠 회장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지식도 그냥 지식이 아니다. 현재를 꿰뚫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조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적극적인 투자 없이 인재가 저절로 얻어지는 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재는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지금 세계는 인재 양성의 동력을 도서관에서 찾고 있다.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은 결과다.
‘도서관 없는 나라’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설령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는 부박한 줄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꿀을 따기 위해 꽃을 찾아드는 벌과 같이 지식을 얻기 위해 도서관으로 몰려드는 국민이 늘어날 때, 지식강국 대한민국의 풍요로운 미래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 이 글은 23자 동아일보 문화칼럼에도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