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부

2005.09.07 11:58:00

얼마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자식이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받은 장학금 전액을 모아 모교에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은 분과, 사업을 해 얻은 이익은 반드시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 환원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고자 힘들게 일해서 마련한 거액의 발전기금을 들고 찾아와 조용히 기탁하고 떠난 분이 있었다.

서구에서는 일반화한 기부문화가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육기관에 기부한다는 말이 들어가면 기부자 자녀와 관련하여 모종의 거래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 탓에 선의의 기부까지 그 본뜻이 훼손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교육적 특혜를 대가로 한 기부금 출연은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진국 기부문화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월마트·듀폰·보잉 같은 대기업들이 출연하는 기부금만도 매년 2000만∼1억달러가 넘는다. 또 빌 게이츠, 테드 터너, 조지 소로스 등의 거부들도 수시로 교육기관을 비롯한 공익재단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한다. 최근 외국의 기부문화는 돈만 내는 것에서 벗어나 기금 운용에도 참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혜택을 받게끔 활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선진국일수록 부의 사회적 환원은 당연한 미덕으로 여긴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재단’의 2000년 통계를 보면 국민 1인당 기부액은 미국 129만원, 일본 28만 8000원, 영국 18만 7200원인 데 비하여 한국은 9만 6000원으로 아직은 미약한 수준에 있다. 또 정기적인 기부자가 80%를 웃도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16%선에 머물고 있고, 지금까지 한번도 기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43%에 달했다. 물론 기부가 경제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국민통합은 행복한 사회의 밑거름이다. 따라서 건강한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대부분의 기부를 기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 보면 기업의 활발한 기부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외국 기업의 경우 일본은 25%,미국과 대만의 경우 10%까지 기부금을 내더라도 손비로 처리하여 세금 면제 혜택을 주고 있으나 우리나라 기업은 기부금에 대한 세금면제 한도가 총 소득금액의 5%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행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이 기부문화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나눔의 실천’에 대하여 인색했던 우리 기부문화에도 변화의 기류가 최근 감지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기부율이 낮고 그나마 대부분의 기부가 대기업 등 법인 위주로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개인도 적극적으로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쾌척하거나 소득의 일부를 사회복지단체에 정기적으로 기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소식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떡 한쪽도 이웃과 나눌 정도로 ‘나눔의 문화’에 익숙한 전통을 갖고 있다. 나눔의 기쁨이 커질수록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평생 김밥 행상으로 힘겹게 모은 재산을 한 대학에 기탁한 후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만 빛이 난다.”는 말씀을 남긴 고 이복순 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시점이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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