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비용’과 ‘품질’ 사이의 딜레마

2005.09.10 23:06:00

지난 9일 대법원에서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토록 한 관련 조례 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결함으로써 전국의 학교에서 하루 평균 600여만 명의 학생이 먹는 급식 체계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학교급식 시 우리 농산물을 사용토록 규정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논의중인 국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판결은 '안전성이 검증된 우수농산물을 사용하겠다'는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단이 외국 농산물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국제협정에 위반된다는 판단인 듯하다.

이번의 판결과 시대 흐름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를 보면서 학교에서의 소비 교육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과거에 '국산품 애용 운동' 등의 캠페인을 벌여 가며 정부가 적극 나서서 외국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고 외제 사용은 곧 매국 행위라며 국산품 사용을 장려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근래 1989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전후부터는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 ‘신토불이’란 유행어를 내걸면서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정부가 조달하여 학교에 공급하는 물자는 물론 학교가 자체적으로 구매하는 물자까지 급식 재료를 자국산으로 사용하도록 학교급식법에 규정하고 있으며, 현 참여 정부의 노대통령도 이미 선거 공약에서 밝히고 집권 초반부터 치중한 최대 현안 중 하나가 우리 농산물을 우선 사용하는 쪽으로 학교급식법을 개정하고,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는 방안이었다.

지난 해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 충북본부가 ‘건강한 학교급식 문화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충북도내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학교급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 학부모의 많은 수가 학교급식이 만족하지 못하다(학생 74%, 학부모 57%)고 응답했다. 그리고 많은 학부모는 돈이 더 들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먹여야 한다(78%)고 했다지만 사실 우리 농축산물 사용으로 인하여 학교급식 비용이 상승했을 때는 문제가 다르다.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비로는 그 많은 돈을 쓰면서도 최상의 급식으로 건강하게 키워야 할 아이들 급식문제에는 가격부터 따지는 일부 부모들, ‘비용’과 ‘품질’ 사이에서 학교는 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장차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청소년들의 건강과 애국심 고취를 위하여 우리 농․축․수산물을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과 당위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논리로 소비 교육을 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학용품과 신발 등 모든 소장품이 이미 국제화되어 있는 마당에 ‘국산품 애용’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울리는 꽹가리’처럼 진부한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날과 같이 국경 없는 무한 경쟁 시대에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 의식이 철저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 소비자의 그 까다로움이 바로 일본 제품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고 오늘날의 '경제 대국 일본'을 건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산품 애용에 대한 캠페인이나 우리 농․축․수산물 사용 권장도 세계 경제 질서에 위배되며 우리 농산물 사용을 규정하는 조례도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이 때 우리 학교에서도 이제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교육에 앞서 국산품과 외제품의 가격,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줄 아는 소비자 의식을 고취하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권장할 때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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