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하지 못하는 사람들

2005.09.18 22:24:00


추석날 새벽, 나는 단잠 대신에 자판 앞에서 아들을 그리며 귀향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분단의 아픔으로 고향을 북에 둔 이산 가족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취업이 안 되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젊은이들, 공부하는 학생들,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 자유의 몸이 아닌 수감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내 아들처럼 전방을 지키는 병사들....

생각해 보니 가장 행복해야 할 명절인 추석이 오히려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참 많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며 나도 시간 여행을 떠난다.

스무 살이던 처녀 시절. 나는 2년 동안 민족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날을 부모님께 가지 않았다. 얼마나 독했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참 후회스럽다. 가난이 죄는 아니었지만 그 굴레를 벗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던 내게 명절에 귀향하는 일은 사치였으며 시간 낭비였고 몇 달간 일을 한 월급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멀리 객지에 보내놓고 명절이면 눈물을 훔치셨을 어버이의 찢어지는 가슴을 헤아리지 못한 불효막심한 행위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 미련스럽게 생각나는 이유가 무언가? 이제 보니 내 자식이 집에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도 그 어버이처럼 그리움으로 안쓰러움으로 그 자리에 가서 서 있음을!

함께 한 시간 만큼만 그리움이 쌓이는 것이며, 흘러간 시간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알았더라면 명절이 올 때마다 그 때 어버이에게 다 하지 못한 불효에 마음 아파 하지 않았으리라. 그것 뿐이 아니다. 결혼을 한 후에는 명절이면 시댁이 우선이었으니 새 신부는 추석 내내 시댁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정에 가고 싶다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명절마다 홀로 계신 친정 부모님을 찾는 일은 늘 희망사항이었으니...

며느리의 역할이 힘들거나, 명절증후군으로 속상해 한 것이 아니라, 여자로 태아나 아들이 못된 아픔으로 추석을 시댁에서 보내고 올 때면 속울음 울던 그 날들의 기억은 세월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잊혀지지 아니하였으니, 사람의 뇌기능은 슬픔에 더 강한 모양이다.

찾아갈 부모가 있다는 것만큼 큰 축복이 어디 있으랴. 어버이만큼 나를 받아주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추석이면 허전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먹어대는 대리만족의 근원이 외로움이었나 보다.

어찌하여 잃은 뒤에,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본 지금에야 불효의 눈물을 흘리는가.
세상의 자녀들아,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현상보다 더 소중한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이 앞선 추석을 맞이하기를!

가족 중심이 되어버린 추석. 농경 문화 속의 추석은 마을 공동체 속에서 나눔과 감사의 모습이었다. 산업사회의 병폐인 정신보다 물질이 앞선 모습은 추석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금의환향을 꿈꾸는 사람들은 추석이 괴롭다. 남들보다 더 좋은 고급차를 몰고 출세함을 자랑하며 고향길을 찾는 사람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추석이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불황 속에서도 추석이면 일시적으로 고급 승용차가 잘 팔린다면 아름답고 따스한 추석이 겉치레와 자기 과시, 체면 문화임을 부인할 수없다.

성공하지 않으면 고향마저 포기하고 어버이가 슬픈 추석을 맞도록 방치하는 자식의 마음 또한 얼마나 아프랴. 지나버린 시간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니,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는 교육을 해야 하리라.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20여 년전 그렇게 어버이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 가난한 추석이라도 웃을 수 있었으리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가면 사랑하기를 미루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함께한 시간만큼만 그리움을 쌓는다는 '모모'의 독백을 나의 제자들에게, 작은 꼬마들의 가슴팍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치리라.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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