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

2005.09.21 18:28:00


‘A-1’이라는 글의 제목에 이어질 내용이 궁금할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철저히 보완이 유지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이름은 더욱 아니다. 단순히 극장에서 발행하는 영화 관람표의 좌석번호일 뿐이다.

명절이 되면 산 넘고 물 건너 극장 앞으로 모여들었고, 길게 줄을 서 고작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최고 자랑거리였던 때가 있다. 바로 내 어린 시절이 그랬다. 옛날을 회상할 겸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웰컴 투 동막골’을 보기 위해 아내와 영화관을 갔다. 외화에 밀려 한동안 사양길을 걷던 국내 영화산업이 국제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예전처럼 활기를 찾아 영화관 주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젊은이들이 영화관으로 몰려드는 추석연휴에 그것도 국내 흥행기록을 갈아 치우며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영화를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뒤에 예매를 한다고 줄을 선 것부터 고생길이었다. 좀처럼 길이가 줄어들지 않으니 지루했고, 더구나 5시간 후에나 상영될 표를 예매하고 있었다.

상영관이 8개나 되는 전문 영화관이었고, 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볼 수 있는 영화가 있어 우리 차례가 되었지만 선뜻 예매를 못하고 창구 앞에서 망설였다. 그때 두 시간 후에 상영하는 ‘웰컴 투 동막골’ 표를 두 장 예매할 수 있다는 자막이 나왔다. 누가 막 예매를 취소했나보다.

이런 상황에서 이보다 더 큰 횡재가 있는가? 재빨리 표를 예매하는데 매표소직원이 ‘두 자리가 떨어져 있고, 한자리는 A-1번 자리인데 그래도 괜찮은지’를 확인했다. 좌석의 번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보고자 했던 영화를 빨리 볼 수 있다는데 작은 불편 쯤은 감수하기로 했다.

상영관에 들어가 A-1번이 맨 앞줄 좌측 자리임을 확인하고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을 때만해도 ‘좀 불편하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되자 왜 앞사람들이 예매를 취소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A-1번 좌석은 완전히 스크린을 벗어난 곳에 위치해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허리는 엉거주춤 45도 돌린 채, 고개는 목덜미가 아플 만큼 뒤로 재낀 채 스크린을 올려다봐야 했다. 화면도 럭비공처럼 타원으로 보이고 일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줄거리마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상영관에서 A-1번 좌석은 완전히 변방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찬밥이었다. 이런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아, 그래서 매표소 아가씨가 ‘A-1번 좌석인데 괜찮으냐?’고 물어본 것이구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말과 달리 ‘웰컴 투 동막골’은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래서 더 스크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앉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자리 때문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앉으려고 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불만을 내뱉는다. 가끔 유리창가에 앉은 아이들이 강한 햇살을 탓하기도 한다.

공평하게 해주려고 자리 이동을 하지만 혹 영화관의 A-1번 자리만큼 불편한 자리는 없었는지? 자기들 딴에는 좋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앉은 아이들을 부러워 하지는 않았는지? 몸을 비비꼬며 아이들의 자리 배정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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