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제자들

2005.10.19 09:51:00


현장학습을 다녀왔습니다. 김밥 싸 가지고, 음료수랑 돗자리도 준비하고 과자도 많이 가져 갔습니다. 서동요 세트장을 구경하고 다음 코스로 '모산미술관' 에 왔습니다. 미술관 현관 앞에 조각상에 모였습니다.

13인의 제자들! 얼굴도 가지가지 표정도 가지가지 성격도 각양각색입니다.

가운데의 다영이는 서 있는 포즈 만큼이나 항상 당당합니다. 항상 공부 잘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조각상 반대편에 유미는 다영이를 좋아하고 쫓아다닙니다. 노란색 웃옷을 입은 영진이는 무게가 느껴지는 장군감입니다. 영진이 바로 위쪽 빼꼼히 얼굴만 내밀고 있는 태복이는 스스로 인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어른들로부터 '효자'라고 불릴 만큼 효도도 잘하고 정직하지요. 태복이 왼쪽으로 보이는 태우는 몸과 마음이 앞서 나가 항상 시끄럽고 요란하지요.

그래도 여자 동급생을 아끼느라 다영이가 집적대도 울기는 할 망정 폭력은 쓰지 않습니다. 태우 왼쪽의 유정이의 당당함은 거만할 정도입니다. 학교에 1등으로 등교하여 시간표 갈아 놓고 우유 갖다 놓고 창문 열어 놓고 또 할 일을 찾는 우리 반 살림 밑천입니다. 쟁반 같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맑고 고운 소리로 또박또박 책을 잘 읽는 장래 '선생님'이 될 귀염둥이입니다. 유정이 왼쪽 옆에 기복이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잠깐 얼굴 비쳤다가 또 달아납니다. 어떻게 하면 기복이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요?

기복이와 정 반대편에 빨강 티셔츠를 입은 희진이는 우리 반 모범생입니다. 발표, 받아쓰기, 그림그리기, 축구, 달리기, 수학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희진네 부모님은 참 좋겠어요. 예쁘고 똑똑한 딸 두어서요. 희진이와 다영이 사이에 끼인 다연이는 너무 작아 간신히 얼굴이 보입니다. 여무지고 똑 부러지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운동장을 30 바퀴 가까이 달리는 저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다연이 보는 재미로 학교에 출근합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머리 모양, 때와 장소에 알맞는 옷차림, 단추 구멍만한 다부진 눈매에 키 큰 친구들도 꼼짝 못 합니다.

다연이 뒷쪽에 우뚝 선 경태는 얼굴이 부처님 같이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부처님'이지요. 기복이와 쌍벽을 이루는 마음 잡히지 않는 악동입니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삽니다. 동생 광태랑 기복이랑 셋이서요. 셋이서 놀 때가 행복합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니까요. 앞머리에 노란 물들인 기선이는 이 다음에 뭘 해도 성공할 사람입니다. 예쁘고, 귀엽고, 남자답고, 약삭 빠르고, 싸움 잘하고 모험심 많으며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이들의 친구라면 융통성 없는 영진이 보다 꽤가 많은 기선이를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기선이 옆에 모자 쓰고 있는 익진이는 잘생긴 외모를 깎아 먹는 신사답지 못한 행동으로 종종 혼이 나지만, 우리 반에서 두번째로 스티커를 많이 모아 칭찬받은 인물입니다. 이 다음에 여자 친구가 생기면 저절로 깔끔하고 신사다워 지겠지요. 그래서 걱정 안 합니다. 아, 맨 앞의 다리 쭉 뻗고 있는 기연이를 소개합니다. 기연이의 공주 같은 외모와 말씨는 딸 부잣집 막내로 자라서 귀여움을 담뿍 받아서입니다. 기연이가 웃을 때는 예쁜 보조개가 돋보이지요. 기선이와 커플 반지를 끼었다가 태우하고도 끼었다고 하고 금새 내동댕이치고 익진이랑 커플 반지를 낀다나요? 다른 친구들이 와서 쫑알대는데 그냥 재미있습니다. 토라져 봤자 고를 남자 친구가 어디 많기나 한가요?

이렇게 13인의 제자는 밥 잘 먹고 공부 잘 하고 잘 놀고 아름답게 커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더 예뻐지는 이유는 제가 나이가 자꾸 먹어서일까요?
최홍숙 청송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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