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회가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2005.10.20 08:23:00

조선 중종 때, 내노라하는 선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급기야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까지 단 하룻밤만에 파계시긴 명기 황진이의 미인계도 화담 서경덕에게만은 끝내 통하지 않았다. 천하의 미인을 앞에 두고도 미동도 하지않은 채 책에 몰두하고 있는 서경덕의 인품에 매료된 황진이는 오히려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니 화담의 학문적 경지와 인물됨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로멘스의 주역이었던 서경덕에게도 그의 마음을 송드리째 빼앗은 큐피드의 화살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다. 서경덕은 요즘 얘기로 표현하자면 지독한 '책벌레'였다. 항상 책에서 손을 떼지 않을 만큼 독서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으며, 책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으로 새로운 이론을 창출하는 등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책을 평생의 연인이자 동반자로 삼은 화담의 인생 철학은 그가 지은 한시 '독서유감(讀書有感)'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배워서 의문이 없게 되면 내 마음 시원하니(學到不疑知快闊), 평생의 허랑함을 면케 할 수 있네(免敎虛作百年人)'란 구절을 살펴보면 배움(독서)에 대한 애착을 갖고 궁구(窮究)하여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일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낀다면 인생을 통달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책 속에는 한 사람의 필자가 겪은 다양한 경험과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인 연구를 통하여 얻은 결과물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이처럼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농축된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고 했고, 윈스턴 처칠은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만지고 쓰다듬으며 쳐다보기만이라도 하라'고 충고했다.

모 언론사와 출판 단체가 공동으로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월평균 1.6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달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은 무려 43.6%에 이른다니,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셈이다. 사회 생활에 바쁜 성인들은 그렇다쳐도 한창 책읽는 재미에 빠져야할 청소년들의 독서 실태를 살펴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여가시간이 주어지면 절반이 넘는 53.5%의 청소년들이 PC통신,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열중하고 독서를 한다는 답은 고작 10.5%에 지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교육당국은 공교육을 통한 독서활동의 강화를 목적으로 2007학년도 고교 1학년(현재 중 2학년)부터 독서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08학년도 입시부터 수능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독서의 영향력이 큰 논술시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독서의 특성상, 타율성이 가미된 정책만으로는 독서 열기 고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지식근로자가 되는 길'을 통하여 '토지, 노동, 자본'이 부의 근원이 되던 시대에서 벗어나 '지식'이 주요 생산요소인 '지식 사회'가 도래함으로써 '지식근로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근로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창조적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력을 높이는 것만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가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책읽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우기 마련이다. 적어도 독서에 관해서 만큼은 거창한 제도나 규범에 의지하기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문화로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 가을은 책을 평생의 연인이자 동반자로 삼았던 서경덕처럼 자녀들과 함께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보면 어떨까.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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