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은 '빼빼로데이' 없다"

2005.11.08 09:12:00

오는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녀석이 친구들에게 선물할 빼빼로를 준비하기 위하여 용돈 모으기 작전에 돌입했다. 평소 용돈이 필요하면 집안 일을 돕고 그 결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고 있던 터라 녀석들은 목표 액수를 채우기 위해 늦은 밤까지 양말을 빨고 있었다.

녀석들은 '빼빼로데이'에 친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는가에 따라 자신들의 능력이 결정된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간에도 선물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하나도 받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끼리 마치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빼빼로데이'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언뜻 외국에서 물건너온 문화 가운데 하나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빼빼로데이'는 11월 11일, 작대기가 네개 겹치는 날에서 힌트를 얻어 부산 지역의 여학생들이 빼빼로를 나누며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날씬해지자는 의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지역의 학생들이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한 '빼빼로데이'가 이젠 학생은 물론 성인들까지 선물을 주고받는 일종의 이벤트데이로 자리잡았다.

물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서는 이 날이 일년 중 가장 큰 대목이겠지만,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달갑지 않다. 말하자면 학생들 간의 건전한 기념일이라면 그 내용물의 유무에 크게 좌우되서는 안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에 몇 천 원씩 하는 빼빼로가 있는가 하면 꽃바구니처럼 만들어서 몇 만 원씩 파는 제품 등 한 푼이라도 아끼고 저축하는 정신을 길러야 할 학생들에게 오히려 과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물'의 양과 질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는 말에 어느 부모가 지갑을 꺼내들지 않겠는가? 우리 아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값비싼 선물을 들려보내고 또 아이가 귀가했을 때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아왔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부모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둘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했다. 평소 훌륭하신 분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내가 흥분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안을 보니 오늘 친구들과 함께 빼빼로를 사러 간다고 했던 아들 녀석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아내의 얘기인즉, 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서산시 부춘초등학교 4학년 5반 안명숙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우리반은 '빼빼로데이' 없으니 절대 그런 선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강력히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아들 녀석은 선물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보는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반가운 것은 선물을 사기 위해 열심히 모았던 용돈을 내일 저금통장에 넣겠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께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경위야 어찌됐든 자식이 선물을 사겠다고 보채면 안 사줄 도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정서에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사항에 대해서 만큼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바로 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이들이 물질의 소중함을 깨우치기도 전에 분수에 넘치는 허영심을 만저 배우게 된다면 나라의 장래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보고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중심을 잡아주고 무엇이 중요하고 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칠 때 우리 교육이 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오늘은 교사의 신분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학부모로서 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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