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친 교단에서 느끼는 서글픔

2005.11.10 08:53:00


요즘 지면 신문이건 인테넷 매체건 간에 신문 보는 게 두렵다. 날만 새면 '교원평가'로 시끌시끌하다. 세간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보는 눈들이 곱지 않다. 심지어 철밥통 운운하는 지경까지 왔으니 더 말해서 뭣하랴.

나는 그 비극의 시작을 홀대받는 교육부 인사 정책에서 찾고 싶다. 교단에 서 본 적이 없는 정치가들이 교육부 수장이 되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경제 논리로 풀어가는 모양새를 지닌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교육문제는 늘 '봉'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무조건' 교원평가를 반대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다. 교원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할 준비와 절차, 과정상의 문제, 즉 선결 문제를 해결하고 교원평가를 하자는 교직단체의 목소리는 이미 함몰되어 버리고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두들기는 형국이다.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호도한 다음, 제 식구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온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모습 앞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채, 마치 주홍글씨를 새긴 선생님 대접을 받게 하는 이 나라의 행태 앞에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교원평가를 하지 말자가 아니라, 타당한 절차를 생략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를 들어줄 귀가 없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에도 학기 초부터 평가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평가 계획과 평가 방법을 명시하여 갑작스럽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 교사들을 평가하는 정책을 충분히 검토하고 그 진정성을 알리고 동의를 받음도 없이 법안 처리하듯이 밀어붙이기로 나가는 현재와 같은 오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도 선생들은 매년 타의에 의해 평가를 받아 왔고 그 평가 자체에 익숙하다. 다만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관리자의 눈이 평가 기준에 부합한 안경을 끼었기를 바라면서 소신껏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생님들.

모르는 사람들은 당당하면 왜 평가받기를 싫어하냐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한다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이 인기평가가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가치 판단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청소년이 그들 앞에 서 있는 담임을 평가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될 아찔함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훈계하고 진솔할 수 있는 스승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학부모들이 하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담임에 대한 한두 가지 정보로, 한 두 번의 수업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잣대의 자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평가를 한다면 동료에 의한 다면평가가 더 낫다고 본다. 다면평가 역시 일반 회사에서 많은 문제점을 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대방의 평가를 낮게 해야 상대적으로 내가 올라가는 다면평가 때문에 직원 간에 반목이 생기고 불신이 깊어진다고 한다. 어떤 제도라도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날마다 바르게살기를 가르치는 직업의 특성상 세상의 어느 집단보다 흉악하거나 몰지각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를 지닌 교사나 지탄받는 교사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물건도 대량생산 체제가 되면 확률적으로 불량품이 나오듯 교사 집단에도 원하지 않거나 본의 아니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부적격 교사 퇴출방안'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자정 노력에 합의한 만큼 부적격 교원 퇴출 방안도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에 평가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일을 못하는 교사가 많은 것처럼 비춰지게 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교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진 못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며 애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사들에겐 자존감이 중요하다.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를 사랑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지금 앞뒤에서 날아오는 돌을 막을 겨를도 없이 뭇매를 맞고 있다. 교단에 설 자격을 인정해 준 국가로부터 받는 서러움이 무엇보다 크다.

온통 신문마다 선생님들 질타하는 목소리가 난무한다. 우리 문화는 칭찬에 인색한 문화임에 비추어 기회는 이때라며 후려치고 때리는 목소리들이 너무 커서 고막이 터질 지경이다. 어버이를 성토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참담한 심정처럼 자기 선생님을 평가하는 학생 앞에 서는 허물어지는 교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세울 수 있을까? 세상은 지금 자기를 위해 염려하고 아껴주는 스승을 저울질하라고 가르치는 형국이 되었다.

교원평가의 목적이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들의 자녀들을 책임지는 우수한 선생님들을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선의의 목적 앞에 아무도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단언한다. 학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이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다. 평가의 잣대를 무엇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교원평가에 대한 확실한 준거를 대야 한다.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을 뒤흔들어 놓은 저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위한 물밑 작업은 아닌지, 특정 정치지도자의 정치용 몸짓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먼저 교직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토론회나 선진 여러 나라의 것을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우리만의 철학과 논리를 지닌 탄탄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한다. 나무마다 수종이 다르듯 똑같은 교대와 사대를 나왔어도 그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학문의 깊이, 자기 성찰을 위한 노력, 꾸준한 연수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교직의 특성상 하루 이틀에 나타나지 않는 교육 효과도 그렇고 가르치는 방식이나 학부모를 대하는 방법도 천양지차이다. 눈에 보이는 학력 점수에 신경을 쓰는 선생님이 있는 가하면 보이지 않는 인성면에 더 치중하는 선생님, 멀리 내다보고 인간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 등 그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

때로는 교실 수업보다는 관리자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느라 아이들보다 일을 우선시하여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인정받는 분들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평생을 교실에서 분필을 만지며 제자들과 동고동락한 노스승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제자들이 그 스승의 숨겨진 진정성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보낸 후라야 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의 매'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아차하면 선생님을 고발하는 교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위축될 교단의 모습.

한 그루 나무처럼 심어진 그 자리에서 오늘도 말없이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지쳐 있는 선생님들을 한 순간에 철밥통으로, 평가조차 거부하는 고지식한 지식인 집단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게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이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선생님의 자존심을 접고 직업인으로 살아야 함을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내막은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모습만 생각하며 모든 선생님들을 향해 삿대질하게 만든 정부와 언론이 원망스럽다.

이 땅의 선생님들은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평가를 받지 않은 교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진실은 언제가 밝혀지리라는 순박한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하였을 선생님들의 처진 어깨를 다독일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는가?

'교사를 평가하려면 교사보다 더 나은, 승복할 수 있는 단체나, 사람, 정책으로 교사들의 동의를 구한 다음 칼을 들이대라!'고 의사 면허증이 없는 의사에게 대 수술을 맡길 수 없듯이 의대 공부를 하지 않은, 교육자의 길을 걷지 않은 정치가에게 재단 당하고 싶지 않음을! 우리 선생님들이 중병에 걸렸다면 수술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검증받은 의사에게 수술 받게 해달라고! 선생님들은 검증받은 시스템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들을 위한다는 명분 앞에 아무도 반기를 들 사람이 없음을!

정부는 이 땅의 선생님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다독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준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힘든 과정을 마치고 몇 년씩 임용 시험을 준비하여 교단에 선 우수한 선생님들에게 자괴감을 안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여론몰이의 방법으로 교단에 떠넘기지 말 것이며, 국가에서 인정해 준 교원자격증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국가발전의 한 축을 이루어 온 이 땅의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마저 뭉개지 않았으면 한다.

어버이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워서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로 떨어지는 것처럼, 선생님을 경시하는 풍조는 제자에게도 국가에게도 이익이 없음을 깊이 숙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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