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만나지 말아야 했을 것을

2005.11.22 16:54:00

교사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자기 반 아이가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저버리는 경우이다. 간혹 주위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 그저 우리 반 아이의 일이거니 싶어 가슴이 저미고, 한편으론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연히 이종 조카 수능 격려차 간 이모집에서 교사이신 이모부로부터 그런 아픈 사연을 듣게 되었다.

“서 선생! 요사이 아이들 수능 때문에 고생 많지. 바쁜데, 뭐 이런 것까지 사와. 참 우리 차나 한 잔 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모부는 이종조카를 응원하러 온 우리 내외를 차 한 잔 하자면서 머물게 하셨다. 이모부는 우리 내외에게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자못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는 대하시는 것이었다.

“이모부 ○○이가 수능 칠거라고 이모부가 더 긴장한 것 아니에요. 잘 볼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 선생, 그게 아니고. 오늘 내가 너무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래.”
“안타까운 소식이라니, 이모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모부는 우리에게 뭔가 속 깊은 사연을 말씀하시고 싶은 심정으로 운을 띄우시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 출장을 다녀오셨는데, 지난 시절 제자의 소식을 내게 알려 주는 거야.”
“지난 시절 제자 이야기라면 반가웠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모부의 마음이 그렇게 상하셨습니까?”

“한 10년 넘었을 거야. 내가 3년 연속해서 맡은 한 아이가 있었어. 학년이 올라갈 때 다른 반에 배정된 아이를 일부러 내가 지도하겠다고 데려온 아이였지. 다른 선생님들은 그렇게 아픈 아이를 왜 일부러 맡으려 하느냐고 염려를 하기도 했어. 하지만 난 왠지 그 아이를 고등학교라도 꼭 졸업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그 아이가 1학년 때 우리 반에 배정될 때부터 하고 있었던 거야. 뭐 그런 거 있잖아. 왠지 나의 지난 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는 동질감 같은 거….”

이모부는 말씀 하시는 동안 계속해서 마음이 안쓰럽고 눈시울이 붉어지시는지 우리를 제대로 쳐다보시지도 못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우연하게 출장을 갔다가 그 아이의 부모님을 만났던 거야. 그 학부모님께서 당시 담임을 맡았던 나를 기억하시고 교장선생님을 일부러 찾아뵈었던 가봐. 우리 같은 사립학교 교사들은 한 곳에서 몇 십 년을 근무하니까 가능한 일이지. 아마 교장 선생님은 영문도 모르고 그 아이의 학교생활과 그리고 그 이후의 생활을 듣게 되었던 거지.”

“10년이 지나고도 이모부를 기억하시는 것 보니 뭔가 사연이 꽤나 있어야 봅니다.”

“사연…. 많았지. 그 아인 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어. 뇌종양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였지. 중학교 때까지 모르다가 고등학교 와서야 비로소 병을 발견했던 거야. 초등학교 다닐 때는 꽤나 공부를 잘 하던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부모님에게 자꾸 했었는데, 당시에 그의 부모님의 단순히 이놈이 공부하기 싫어 꾀병 부린다고 생각하고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때론 회초리로 야단을 치기도 했다나봐.”

“참 무심도 하시지. 물론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그 부모의 마음은….”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던 아이라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어. 특히 그의 부모님은 어떻게든 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나만 믿고 의지했던 거야. 아마 그의 아버지도 어디학교 교사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3년간 우리는 학교에서 거의 몸만 따로 였지 마음은 하나였어. 오죽했으면 다른 선생님들이 자기 자식도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핀잔을 주기도 했지.”

이모부는 한편으로 그 아이의 추억을 떠 올리면서 한편으론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그 아이를 잡으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헌데 그 아이는 졸업하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에 죽었다고 하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중간 중간 수술 후유증으로 아프기는 했지만, 건강하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차라리 만나지 말아야 했을 것을….”

이모부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셨다. 삼년간을 생사고락을 같이 해오다시피한 지난날 제자의 죽음 소식을 다른 이로부터 전해들은 이모부의 마음을 우리 부부가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슬픔은 어찌할 길이 없었다.

출장 갔다가 만난 지난 시절 학부모로부터 들은 아이의 죽음 소식에 이모부는 말씀을 제대로 잇지 못하셨다. 몇 년간 가슴속에 묻어 둔 상처를 일부러 후벼내기라도 한 듯 괴로워하시는 것이었다.

이모부를 뵙고 집으로 향하는 우리 부부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교사로서의 길이 정녕 평탄하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현재 맡고 있는 학급의 아이들의 얼굴이 그 슬픔 뒤로 떠올랐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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