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의 숲에서 만난 공자

2005.11.29 11:33:00


공자의 유가사상은 공자조차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조선의 조광조에 의해 접목을 시도했었다. 중종 임금이 자신의 약한 정치 기반을 바로 세우면서 강력한 정치 개혁의 도반으로 삼았던 조광조를 담기에는 그릇이 작았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 크지 못한 나무에 깃들기를 서둘렀던 조광조의 급진적 정치 성향 탓이었는가?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 조광조를 키우지 못한 조선의 역사를 아쉽게 생각하곤 했다. 동양 사상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공자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완성하고자 목숨까지 내놓은 조광조의 왕도정치가 성공했다면 이 나라 조선의 역사가 그처럼 외세의 침략에 무너지는 서글픈 역사를 가져 오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 말이다.

지금도 이 나라는 보수와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들이 상존하고 있다. 그들이 부르짖는 수사 앞에는 늘 '국민을 위한다'는 수사가 접두사처럼 따라 다닌다. 그래서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그들이 부르짖는 수사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으며 정치적 행동이 아닌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높은 학력과 명예로운 과정을 거쳐서 입지에 오른, 높은 사람들이기에 후광 효과까지 겸하고 있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유림 2권을 읽으며 적어도 공자의 사상에 정치가들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진리와 진실의 힘만큼 강한 것은 없으며 진솔함의 가치는 시대를 건너 뛸 수 있는 가르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림 제 1권에서 조광조를 따라 유가사상을 여행하게 하는 작가 최인호는 제 2권에서는 공자가 도를 유세하고 다닌 중국의 여러 나라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제 2권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은 기원전 517년, 정치를 통하여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성현 공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상 국가 실현을 위해 제자들과 주유열국하며 유세하였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70여 나라의 임금으로부터 백안시당한 공자의 행적과 일화, 사상이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공자의 나이 35세에 주유열국을 시작한 그의 정치 사상은 <논어>에 집약되어 있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라는 말로 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질서의 극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곧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세간에서 널리 회자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인류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자리에서 돌고 도는 모양새를 보인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어지러운 현실이라서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니 사회가 돌고 정치가 표류하는 것은 아닌가? 정치란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 보았다.

작가는 공자의 사상을 펼치는 책 속에서 노자의 사상을 곁들여 보이기도 하고 부처와 예수의 사상까지 넘나드는 지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어서 더욱 감칠 맛나는 양념으로 책을 읽어가는 군침을 돌게 한다.

언어나 문자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노자. 심지어 노자는 '신의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에는 신의가 없다. 착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않고 , 말에 능한 사람은 착히지 않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일갈하고 있음을 소개한다. 이는 곧 중국의 선종이 추구한 불립문자, 즉 불교의 깨달음은 말이나 문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상통하고 있음인 것이다.

노자와 공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선문답으로 끝나는 대목은 이상과 현실이 함께 양존할 수 없는 벽처럼 보인다. 노자와 공자가 운명적인 만남을 뒤로 하고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 세상 밖으로 은둔하는 데 반해 공자는 적극적으로 정치 일선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자의 도가 초월적인 것이라면 공자의 도는 현실 참여적이었다. 예수가 인류의 구원을 '하늘나라'에 두고 있고 부처도 깨달음의 궁극을 번뇌에서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드는 '피안'에 두고 있으며 노자도 도의 목표를 '무위'에 두어 결국 인간은 우주의 한 구성요소이며 완전한 해방과 절대의 자유를 이룩하는 데 두었음에 반하여 공자는 하늘나라가 아닌 지상에서, 피안이 아닌 차안(此岸)에서, 우주가 아닌 바로 전국시대의 난세에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단 하나의 예외적인 선각자라고 작가는 결론 지어말한다.

공자의 나이 51세에 드디어 그의 뜻을 펼치는 정치가의 길에 들어서서 황금시대를 이루는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3가지 도는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 있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니 이는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진리라고 생각된다.

기원전 497년, 55세의 나이에 노나라의 대사구 (재상을 겸하는 최고의 벼슬)에 오르며 4년 동안 어지러운 난세를 태평성대로 바꿔 놓은 공자의 정치적 행보를 따라 조선의 조광조도 4년 동안 황금기를 구가하다 낙마하였으니 참으로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이후 공자는 그를 받아줄 나라를 찾아 전전하지만 끝내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지 못한 채 학문적 업적을 쌓아가는 일에 매진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공자의 그러한 불운한 말년이 그로 하여금 빛나는 유교의 창시자로, 동양 사상의 원류가 되게 했으니 고난은 위대한 성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서곡이었던 것이다.

"진실로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년이면 그 나라를 바로잡을 수가 있고, 3년이면 완전한 정치의 성과를 올릴 수가 있다."고 한 공자의 단언을 정치에 접목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조선의 조광조였으니 유교 사상의 진원지는 중국이었지만 꽃을 피운 곳은 조선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꽃이 꽃봉오리 상태에서 떨어지고 말았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림 2권에는 공자의 훌륭한 제자들이 있었기에 그의 사상이 정리되고 보존될 수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았다는 공자, 양금택목(좋은 새는 나무를 잘 살펴서 깃들고,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의 원칙을 죽는 날까지 고수한 공자의 날선 의식은 바로 이 나라 조선의 선비 정신으로 이어졌으니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정신이 아닌가.

시류를 따라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철새처럼 행군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양금택목의 절목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한 가치일까? 아니 아무리 목이 말라도(정치자금이 부족해도)도천의 물(부당한 정치자금)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 어불성설인가?

오히려 공자의 유교 사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위대한 동양사상으로 서양에서 더 연구하고 배운다고 하니, 그 사상이 정치적으로 꽃피운 조선의 유교 사상은 이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될 것이 아닌가? 현실 정치에 접목시킨 조광조와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퇴계 이황은 유학의 이론과 실제가 조선에 공존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점쳤다. 위대한 사상이 뿌리내렸던 나라, 위대한 선각자들의 혼이 숨쉬는 나라이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정치적으로 교육적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소학과 논어에 담긴 위대한 사상도 같이 접목을 시켜서 고전과 현대 사상이 함께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함도 깨닫게 되었다.

백화점에서 온갖 물건을 나열해 놓고 파는 것처럼 학교 교육에서 너무나 많은 것(과목과 가치관) 가르치느라고 오히려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에 이르는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교육의 모습과 교실의 풍경을 생각해 보게 한 책이었다.

위대한 고전은 삶의 거울이며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분명히 사람에 이르는 길이 책갈피마다 행간마다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나는 학생들에게 수능 시험을 끝낸 고 3 학생들이 읽으면 가슴이 넓어지고 사색의 깊이가 더해지는 풍요로운 이상을 꿈꾸게 하리라 믿으며 두서없는 감상문을 남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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