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가르친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당연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망각할 때도 있고, 때론 매너리즘에 빠져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다가올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은 교사로서 평생을 가져가야 할 ‘업’임은 두 말할 나위 없는 핵심 명제임은 분명하다.
아이들 앞에서 열심히 강의하는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의 가르치기에서부터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교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아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무슨 책 읽으세요?
가끔은 아이들이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독서에 심취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흐뭇함을 감출 길이 없어, 아이들 옆에 가서 유심히 그들의 책읽는 모습을 살피게 된다.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니? 샘에게도 좋은 책 있으면 추천 좀 해 줘라!”
“선생님 이 책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선생님이 도서관에 구입해 놓지 않았더라면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을 텐데, 여하튼 선생님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지의 선생님도 미처 몰랐네. 여하튼 ○○이가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우리 도서관에 있다는 것만으로 선생님은 기쁜데.”
평소에 책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우연하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아이의 작은 변화에 기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아이들이 골똘하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다 보면 “요즈음 우리 아이들 정말로 책 안 읽어. 인터넷이나 할 줄 알지, 뭘 열심히 읽고 공부하려고 하지 않아, 문제야 문제!”라는 말이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교사로서 나는 열심히 읽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항상 책 좀 읽으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교사인 나는 어떤가’라는 생각을 하면 부끄럽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 대학원 공부에 가정생활에 나름대로(?) 충실하려고 하다 보니 학교 울타리 밖에서 책을 본다는 것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변명에 지나지 않겠지만.
‘과연 내가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과연 나를 믿고 따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아이들이라 선생님에게 겁 없이 ‘선생님도 책 좀 보세요’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실상 그네들도 마음속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리라는 생각을 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된다.
하루는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일 주일에 한 두 시간 정도 자율학습할 수 있는 시간이 난다. 이 시간에는 밀린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보내는 아이들을 좀 더 자유스럽게 살필 수 있게 된다. 시험 기간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유심히 보고 있는데, 대뜸 한 아이가 “선생님 요즈음 무슨 책을 읽으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순간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그 아이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응―, 너희들 가르칠 교재 연구한다고 선생님이 책 읽을 시간이 있나.”
지나는 말로 아이의 물음에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보고는 항상 책을 가까이라하고 했지만, 당장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대답할 수 없음이 부끄러웠다.
먼저 보여주고 실천하는 모습이 교육의 첫 단추가 아닐까?
당장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그리고 수업 시간과 그 외 시간을 가리지 않고, 혹은 책을 읽든 읽지 않든 항상 아이들 앞에서 책을 들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쓴 서평도 보여 주곤 했다. 아이들에게만 읽고 써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몸소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읽고 써 가는 과정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무슨 책을 읽는지 눈길이 갔다. 명색히 지식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는 우리 선생님들이 독서를 삶의 가장 보편적인 양식으로 체득하고 있어야 함은 당연함을 넘어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의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선생님 우리 도서관에 가서 책 좀 빌려 보이소.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들었왔는데. 선생님들의 발걸음이 너무 뜸합니다. 아이들 보기도 그렇고….”
“서 선생, 어디 책 읽을 시간이 좀체 나야 말이지. 교과지도 연구도 해야 하고, 학생지도도 해야 하고, 어디 그것뿐인가. 공문 수발에 이런저런 잡일들 하면 어디 학교에서 책읽을 시간이 좀체 나야 말이지. 그리고 집에 가서 편안하게 어디 책 읽을 수 있나…. 국어 선생님들이야 독서와 논술 지도를 해야 하니까 열심히 책들 읽어라구. 우리야 뭐….”
한 선생님의 변명 투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책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를 내기란 정말로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같이 점심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짧은 점심 시간과 수업 부담 때문에 더 힘들다.
“선생님 제가 도서위원들을 시켜 신간 위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읽을만한 책이 있다면 그 때 잠시라도 관심을 가지고 빌려 보시도록 하십시오.”
“그것 좋은 생각이네. 책 좀 가져와 봐. 제대로 다 읽을 수 있을런지도 몰라도 관심만 가져도 남는 게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뭔가 귀감도 될 것이고.”
한 아이가 말이 자극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는 작은 가르침이었다. 그 아이가 툭 하고 던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헤아릴 수 없겠지만, 진정 교사로서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을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럽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