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쇼핑에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축복 받은 오늘.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으로 꽃다발을 전해 주세요.'
1990년 마지막으로 학급 담임을 하던 해였습니다. 안양 시내에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신흥도시는 아니지만)였기 때문에 시골 학교에서만 근무하던 내가 보기에는 엄청난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이 학급의 아이들은 생일잔치를 꽤나 거창하게 하는 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친구들 10여명씩을 불러서 피자 파티(당시만 해도 피자는 상당한 고급 음식이었음)를 한다든지 아니면 아이들을 뷔페식당으로 불러서 한 턱 쏘는 그런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학급에서 비교적 활달하고 친구들을 잘 몰고 다니는 여자아이 하나가 자신의 생일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모님이 직장 관계로 멀리 대전에 계시면서, 집에 계시지 않아서 미안하니까 전화로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먹으면 와서 갚을 테니까 잘 대접하라고 일렀던가 봅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아이들을 몽땅 다 불러서 학급 인원의 절반이 넘는 26,7명이 몰려갔더랍니다. 1인당 2만원에 가까운 식당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선생님의 한 달치 월급과 거의 맞먹을 만큼을 생일잔치로 써버린 것입니다. 아이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생일 잔치 비용을 그렇게 많이 써 버려도 괜찮니?"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서 있는 아이에게 "그래, 친구들에게 멋지게 한 턱 쏜 것도 좋겠지? 그러나 그만큼 썼으면 어머니께는 무얼 선물했니?"했더니, 아이는 의외라는 듯 "내 생일인데 어머니께 선물을요?"하고 반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넌 네 생일이니까 너만 즐거우면 되는 것으로 알겠지만, 사실은 네 생일은 어머니께서 너를 낳아 주신 날이 아니니? 그런데 어머니는 너를 낳는 그 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았니? 애를 낳으러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내가 이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한단다. 그 만큼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는 거야."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고마우신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면서 '어머니 저를 낳아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씀드리면 얼마나 고마워 하시고 기뻐하시겠니? 친구들에게 쓴 비용의 절반만 썼더라면 아마도 꽤 큰 선물을 할 수 있지 않았겠니?"했더니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 아이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이미 늦어 버렸고, 내년부터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학급 전체 어린이들에게 이제 '내 생일날은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는 날'로 정해서 실천하도록 가르쳤고, 어린이들은 모두들 조그만 선물이라도 마련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내 생일이니까 내가 축복을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께 감사드리는 날로 만들어 우리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