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도 무섭지 않은 산골 아이들

2005.12.21 20:57:00


오늘은 온 세상이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사택 창문을 열고 눈꽃 세상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느낌도 잠시, 아이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이 눈 속에 학교에 오라고 해야 하나, 집에서 쉬라고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는 데 학교에서 가장 먼곳에 사는 피아골 마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아랫 동네에서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전화가 오는 데 어쩌지요?"
"글쎄요. 내려 오실 수 있으세요? 피아골이 가장 힘들텐데요."
"이 정도라면 내려갈 수 있겠습니다. "

다행히 아이들은 학교에 거의 다 왔고 한, 두 명만 감기를 앓고 있으니 집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교 시간이 되니 그친 것 같던 눈이 계속 오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을 보니 군내버스마저 끊길 것 같아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서둘러 아이들을 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피아골에는 버스마저 올라가지 못 하게 되어서 걱정을 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피아골 친구들은 걸어서 가면 되요. 선생님. 30분이면 충분합니다."
4학년 미영이가 대수롭다는 듯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3.5km의 거리를 아이들 걸음으로 그것도 눈 속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인데 1시간 반은 족히 걸릴 것인데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습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곳이니 오랜만에 눈장난을 하며 걷는 것도 행복하다는 아이들.

특히 우리 1학년 한서효는 아주 신이 났습니다. 처음부터 걸어갈 채비를 하고 왔다는 표정이 얼마나 씩씩한지 대견하고 기특하고 놀라웠습니다. 걸어갈1학년 짜리가 안쓰러워서 꼬옥 껴안아주며 조심하라고 타일렀습니다.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걱정 속에 아이들을 보내고 걸어서 출발했다는 전화를 하니 서효 엄마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선생님, 걱정마세요. 걸어오라고 미리 다 얘기 해 두었어요. 서효는 어린 애가 아니에요. 오히려 즐거워 할 텐데요? "
"아이들을 용감하게 잘 키우셨습니다. 때로는 고생도 해 봐야 하거든요? 눈 오는 날 선배들과 함께 눈싸움도 하면서 눈길을 걷는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겁니다. "

만약에 도시 학교 아이들에게 걸어서 집에 까지 눈길에 1시간 반 동안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도 학교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리라. 내가 어려서는 눈 속에 풍풍 빠지면서도 학교에 가는 일이 매우 당연했고 발이 시리고 옷이 얇아도 그런 건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우리 반 1학년 짜리아이에게서 발견한 기쁨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서효야, 집에 도착하면 학교로 전화해. 장한 서효에게 포인트를 몽땅 줄거야. 자. 가면서 이 사탕도 먹으면서 씩씩하게, 조심해서 잘 가렴. 전화 기다릴게."
"예,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은 집에 안 가세요? "
"응, 내일도 눈때문에 힘들까봐 학교에 있을 거야. 내일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전화 할테니 출발하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렴."

3년 동안 이렇게 눈이 많이 온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신이 나서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있으면 같이 어울릴 친구조차 없으니 그래도 학교에 와야 좋다는 아이들입니다. 눈이 와서 아빠 차대신 아빠 손을 잡고 미끄럼을 타며 학교에 와서 매우 신났다는 찬우는 볼까지 빨갛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정보화 시대라고들 하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가 봅니다. 어찌할 수 없다면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즐기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니 비로소 걱정스럽게 쌓이는 눈이 하얀 쌀가루처럼 보입니다. 백설기를 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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