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입시를 앞둔 고2 아이들이라 방학의 의미도 느낄 여유도 없이 바로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들 앞에 놓여진 큰 산을 넘어가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 때문인지 군소리 없이 대부분 참석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받았기 때문에 출석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조건 다 나오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야 하는 담임의 입장이 썩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방학 때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공부하려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꼭 대학이 목표가 아닌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보충수업이 교육적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시라는 거대한 목표가 그들 앞에 버티고 있는 한 약간의 타율적인 부분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는 터였기에 아이들 하자는 대로 무조건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주말을 보내고 보충수업이 시작되는 날, 다른 날 보다 더 일찍 출근해 교실로 가 보았지만, 교실은 냉기만이 돌 뿐 텅하니 비어 있었다. 아직 수업시간까지는 15분정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명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다.
혼자 텅 빈 교실을 향해 ‘이놈들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조금 일찍 나와서 공부 좀 하면 얼마나 좋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교무실로 돌아오니 그제 서야 한 두 명씩 오는 것이었다. 반갑고 고맙고, 그리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이 추운 겨울에 아무리 입시라는 것을 앞두고 있지만, 아침 일찍 무거운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에 나온다는 것 자체만 해도 얼마나 가상한 일인지 싶어 서운하고 화났던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1교시 수업을 들어가 보니 몇몇 빈 자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이놈들, 선생님들이 그렇게도 이 시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건만 결석을 해. 두고보자.”
“선생님, 참으세요. ○○는 오면 오히려 공부에 방해되잖아요.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나아요."
하지만 보충수업을 위해 이렇게 일찍 나와 준 대다수의 아이들을 위해 무조건 화만 낼 수는 없었다. 몇몇 오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대다수의 많은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업의 열기는 대단했다. 평소 정규 수업보다 훨씬 더 공부하려는 의욕들이 넘쳐 보이는 것이었다. 내심 ‘평소에도 이렇게 의욕을 좀 가지고 공부좀 하지’라는 생각이 자꾸만 아이들의 눈으로 전달되는 것이었다.
수업이 거의 끝날 때 쯤 여전히 몇몇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혹시나 늦잠 때문에 늦게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수업 끝나는 종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반 주소록을 찾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옆에 계시던 선생님은 “서선생, 괜한 짓 하지마. 공부하려고 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하지. 뭐하려고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전화까지 하며 오라고 해. 혹여나 그런 아이들 수업에 참석해도 수업 분위기만 나빠져.”하시며 웃음 섞인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한참 선배 선생님의 말씀인지라 괜스레 농담으로 하시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니 지금까지 학교에 안 오고 뭐하노. 아직까지 자고 있나.”
“선생님, 죄송합니다. 일어나보니 10시가 넘었지 뭡니까.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면서 방학이라 저를 깨우지 않는 바람에 지금까지 자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알았다. 빨리 씻고 오너라.”
“선생님 죄송합니다. 집에서 어린 동생 보느라고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방학이라고 집에서 아이 좀 보라고 해서….”
“그럼 공부는 안 하고, 집에서 동생만 볼래.”
“아닙니다. 어머니께 말씀 드리고 내일은 꼭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몇몇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나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방학조차도 입시에 압수당한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대하면서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다른 선생님에게 지나는 말로 묻게 되었다.
“선생님 정말 이런 보충 수업 해야 합니까. 공부는 정규 시간에 열심히 하고 방학 때는 알아서 부족한 공부를 찾아서 하면 되는데, 굳이 이런 추운날에도 억지스럽게 아이들을 불러내어 수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학부형들이 가만히 있겠소. 평소에는 전인교육이다 참교육이다 뭐다 하면서 떠들다가도 막상 입시라는 거대한 벽이 앞에 놓이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이 우리 교육현실 아니오. 교사가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소. 더구나 우리와 같은 시골 학교도 이런데, 대도시의 학교들은 어떻겠소.”
“그럼 학부형들의 눈이 무서워 이렇게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서선생 자식이 예비 고3인데, 방학 때 집에서만 빈둥거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장에 그 학교는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도 하지 않나. 중요한 입시를 앞두고 너무하네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소. 물론 그것이 옳고 그르다라는 것을 떠나 우리 교육현실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소.”
선생님의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는 것에 그만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내자식이 만약 예비 고3이라면’라는 말이 주는 묘한 여운이 자꾸만 뇌리를 맴돌았다.
다음날 몇몇 아이들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아이들이 과연 내 자식이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수업만 하고 있어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참교육은 뭔지, 그리고 그 잣대는 어디에다 맞추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