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방학 때도 도서관 문 좀 열어 주세요

2006.01.12 08:29:00

“선생님 방학 때는 도서관 문 열지 않습니까. 책 빌려 볼 때도 없고, 학교 아니면 안 되는데….”
“이 놈아, 그럼 선생님이 너 책 빌려 주려고 학교에 나와야 되겠니.”

방학 전에 책읽기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가 도서관 담당인 필자에게 직접 찾아와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아이에게 타박 아닌 타박을 주고 나니 마음이 좀 그랬다.

시골 아이들이라 특별하게 책을 빌릴 만한 곳이 없다. 도서관이라야 인근 읍이나 도시로 나가야 되니,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곳은 학교 도서관이 유일했다. 하지만 방학이 되고부터 아이들은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을 잃고 만 것이었다.

내심 고민이 되었다. 방학 중에 나오시는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아이들의 책 대출을 부탁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당번 나오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맡길 수도 없었다. 도시의 큰 학교 같은 곳에서는 도서관을 맡고 있는 사서가 있기 때문에 방학 중에도 얼마든지 아이들에게 책을 대출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골 학교들이라 도서관을 담당하는 인력이라고 해 봐야, 고작 도서관 담당 교사와 몇 명의 대출 및 자료정리를 맡고 있는 아이들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 보고 돌아가면서 방학 중에 나오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랐다.

작년에 도서관 사업에 선정되어 도서관이 새롭게 단장을 했고, 장서도 많이 구비한 결과로 학생들의 좋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방학까지 도서관 문을 열어 아이들에게 무조건 개방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많았다. 담당자로서 아이들의 책읽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들에게 책을 맡겨 놓기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고민이 되던 차에 인근 학교에 담당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문의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 학교에서는 방학 중에 책 대출을 어떻게 합니까?”
“저도 고민입니다. 학교에 도서관을 맡아 줄 인력도 없고, 그렇다고 제가 방학 중에 계속 나올 수도 없고 이래저래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학교야 이래저래 동병상련의 푸념만 늘어 놓기 일쑤였다. 물론 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학부모님들이 직접 번갈아 나와서 아이들에게 대출을 해 주기도 하고, 전담 사서가 배치되어 대출을 해 주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골학교에서는 이런 일을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다. 사서는커녕 학부모님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바쁜 농사일과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일에 솔선수범해서 도와 줄 만한 학부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민한 한 채 방학이 시작되고 도서관 문은 부득이하게 걸어 잠걸 수밖에 없었다. 부득이하게 방학 전에 아이들에게 몇 권씩을 한 꺼번에 빌려 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개학을 하고 얼마나 아이들이 책을 제대로 읽고 가져 올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이들이 어떻게든 책을 빌려 가고 펼쳐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대출을 해 주게 되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며칠 흘렀다. 보충 수업에 나오는 아이들 중에는 벌써 책을 빌려 달라고 아우성 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물론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책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은 외면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보충 수업을 마치고 따로 시간을 마련해서 책을 빌려 주게 되었다.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책을 빌려 읽겠다는 그들의 눈빛만 봐도 마음이 흐뭇했다.

“선생님이 방학 중에 계속 나오면 이렇게라도 책을 빌려 줄 수 있을 건데. 미안하다. 선생님도 방학 중에 공부도 해야 하고 미루어 놓았던 일도 해야겠기에 너희들에게 매일 책을 빌려 줄 수 없구나. 보충 수업 기간 만이라도 선생님이 오후에 남아서 빌려 줄께.”
“선생님, 아니예요. 이 정도면 남은 방학 기간 동안 읽을 수 있겠어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몇 명의 아이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심 ‘차라리 방학 때도 도서관에 매일 출근을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행 가능성 없는 일이라 싶어 쓴웃음만 나왔다.

일선 교육당국에서는 도서관 사서를 뽑아 해당 학교에 배치하겠다는 정책을 세워놓고 있지만, 실상 도시의 큰 학교 몇 군데만 배정되는 형편에 있다. 여전히 예산 문제로 인해 전 학교의 도서관 사서 배치는 요원한 형편이다.

차후 도서관이 일선 학교에 제대로 갖추어지면 그에 따라 도서관 인력도 그에 맞게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꼭 전문 사서가 아니더라도 항상 도서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사무인력이 배치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아이들의 책에 대한 애정이 높아가는 만큼 그에 맞는 조건도 맞추어 가야 하는 것이 기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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