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하는 자식에게 주는 설날 덕담 5가지

2006.01.29 08:55:00


2005년 1월 24일은 남편과 내가 빚은 첫 작품(?)이 세상 속으로 출고되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친 남편은 딸아이가 첫 근무를 하게 될 직장을 찾아서 화분을 보내줘야 한다며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렀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바쁘다고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해서 늘 미안해 한 우리 부부입니다. 대학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발령이 난 걸 생각하니 나는 내내 마음이 아픈데 남편은 기특하다며 즐거워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보내서 16년 동안 학교 공부로 달려온 심신을 쉬게 한 후 출근했으면 좋을텐데, 다시 세상으로 나가 황금같은 젊음의 시간을 일로 보낼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책과 씨름하며 학교 공부와 공무원 시험공부를 병행하며 매달려 온 아픈 시간의 열매를 손에 안은 자랑스러운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29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열여섯 살에 일터로 나가서 독학으로 주경야독으로 5년 뒤에 얻었던 공무원으로 출발한 내 모습을 돌아보며 나는 작은 한숨을 들이켰습니다. 정말 마음 편하게 놀러 다녀본 추억도 없이 보낸 젊음. 결혼과 함께 자식을 기르면서 직업 전선에서 공무원과 교직생활 29년을 보낸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의 모습은 지천명으로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 성성해진 머릿결. 이미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을 향해가는 빠른 시간의 물줄기 앞에 서서 '삶이란 정말 별거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 한 조각.

그러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얘야, 엄마는 가난한 집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라서 부모님을 부양할 책임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일자리를 얻어야 했단다. 일하는 엄마라서 너희 남매에게 제대로 못해 준 게 너무 많아 늘 미안했고 아빠에게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했단다.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를 충실히 해내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는 엄마처럼 일하는 여성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고 싶구나."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서서 엄마처럼 살고싶다고. 두 아이를 기르며 눈물과 함께 밥을 먹었던 숨겨진 아픔의 시간들을 나처럼 대물림하며 살아갈 딸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착잡해옵니다. 제대로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빨리 먹어서 생긴 위장의 이상으로 음식먹기가 부담스러워진 지금. 일과 공부, 육아와 아내 역할, 며느리와 딸노릇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으니 뒤집어 말하면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했고 쉴 시간이 부족했으며 늘 달리고 쫓기듯 살아야 했습니다.

주어진 24시간 속에서 때로는 엄마 노릇을 못해서 눈물 흘려야 했고 앞만 보고 달리며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내 삶에 회의하며 우울해 했던 시간들도 숨어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던 30년을 보내고 나니, 어두워진 눈, 엉성해진 머릿결, 돌아가는 길이 바빠 조급해진 마음에 염려되는 건강까지...좋아하는 책도 눈이 나빠져서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 서글프고 음식 맛도 잃어가는 미각으로 요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이듦의 서글픔.

이런 내 마음을 아무리 말해 줘도 자신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니 위풍당당하게 달려갈 태세로 씩씩하게 출근하는 딸아이가 부디 처음 마음을 잊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달려온 내 방법을 전수해 주려 합니다.

첫째, 여성임을 내세워 눈물을 보이거나 쉬운 일자리를 생각하지 말 것.
둘째, 모르는 것을 배우는 데 게으르지 말고 자기 업무를 정확히 파악할 것.
셋째, 전문 서적과 교양 서적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 것.
넷째, 공무원은 철저하게 봉사적인 자리임을 잊지 말고 친절하고 성실할 것.
다섯째, 자신을 위해 노는 시간도 남겨 놓을 것.(이것은 내가 못해 본 것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너나 없이 힘들어하는 현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추구하며 학부 졸업생이 몰려드는 공무원 시장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한 딸아이의 힘찬 2006년을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취업의 문턱에서 젊음을 보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힘든 과정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싸움에서 의연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