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上)-교육양극화 대안 아니다

2006.02.04 08:50:00

기존의 특기적성교육, 수준별 보충학습, 방과 후 교실 등을 포괄하는 교육부의 ‘방과 후 학교’ 법안이 학원 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사업 추진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이미 약 690억원의 예산까지 책정해놓은 상태이고 이 수요를 겨냥해 대규모 학습지회사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 대형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강사와 교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학교에 진입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방과 후 학교’ 가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라 할지라도 정부가 학력중심 사회현실을 그대로 둔 채 교육양극화 현상 해소나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EBS 수능과외처럼 당장의 고열에 놀라 임시방편으로 해열제를 처방하는 꼴일 뿐, 이미 합병증에 가까운 우리 교육문제의 근본적 처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는 그간 교육부가 교육공동체의 합의와 검증 절차 없이 강행하려는 일련의 졸속법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입시제도 개선, 학력격차 없는 사회 조성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통하여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철폐를 위해 매진해야 할 교육부가, 그리고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가 기껏 내놓은 정책이란 게, 결국 학교 안에서 사교육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과외를 시켜주는 또 다른 학원을 만들어 공교육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으니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울 따름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수준별 보충학습’은 학교 밖 교과 과외에 대한 사교육 수요를 학교 내로 흡수하면서 사교육비 절감효과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선 고등학교에 따르면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이것도 학생에게 부여된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고 반강제성을 띠는 등 변칙 운영이 아니면 그 수요가 언제라도 학교 밖으로 옮겨갈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방과 후 학교’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사교육 수요를 학교 내에서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의 ‘방과 후 교육활동’ 운영 시스템을 자율화·다양화·개방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책이 자칫 정규 교육과정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항간의 우려를 없애기 위하 학습지, 문제풀이식, 교재판매 위주의 프로그램이나 정규교육 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해치는 프로그램은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사진도 지역 인사·학원 강사·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현직 교원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현직 교원이 참여하는 데 어떻게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정규 교육과정이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수준 높은 교육의 질 또한 문제이다. 교과에 관한 한 전문가가 모인 공교육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녀를 사교육 현장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고 교육열이 높을수록 더 경쟁력 있는 학원과 과외교사에게 자녀를 맡겨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알아주는 대학에 보낼 준비를 하는 법이다. 사교육과 경쟁할 수 있는 다양한 보충학습 방안에 현직 교사 외에 다른 실력 있는 강사는 결국 학원의 전문 강사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방과 후 학교’로 인하여 학교는 자연스럽게 학원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준비 없는 ‘방과 후 학교’ 법안, 결국 학원도 망하고 학교도 망할 정책 법안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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