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출산 문제를 지켜보며

2006.02.07 10:08:00

20여 년 사이에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가족계획정책의 변화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무서운 핵 폭발 더 무서운 인구 폭발' 이런 유의 표어가 거리마다 즐비하게 나붙던 시절이었다. 전통적으로 다산을 미덕으로 삼고 부귀다남을 기원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전통이었다.

그러나 점점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같은 표어가 국민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요즈음엔 저 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아내가 낳을 수만 있다면 아들 하나 더 낳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세대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던 세대였다. 자녀도 여럿 낳고 싶었지만 반 강압적으로 그러한 욕망이 차단당한 세대였다.

정말 인구증가가 정말 무서운 핵폭발처럼 무서운 줄로 생각했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2위라고 배웠고 우리의 가난이 인구가 많기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가난을 탈피하고 싶었고 정부의 시책을 따랐다. 아직도 그런 생각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데 갑자기 출산장려정책을 편다고 하니 정부가 이랬다 저랬다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작가는 우리 세대가 고향을 간직한 마지막 세대라고 했다지만 그 말은 곧 지금의 50대인 우리들이 대가족제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도 될 것이다. 점점 핵가족이 사회적 추세가 되어갔고 이농현상이 봇물을 이루어 도시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여성들도 모두 일터로 나섰고 여러 자녀를 갖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정부의 가족계획정책은 성공하고 급기야 출산기피현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닌가.

70년 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은 인구 억제 정책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세 번째 자녀에게는 의료보험 혜택도 주지 않았고 가족수당도 주지 않았다. 아파트 분양권도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 자녀 네 자녀를 생각할 수가 있었겠는가. 결국 국가의 시책에 전통도 무너지고 손자 하나 바라던 노부모님들의 기대도 무너졌다. 가난한 월급쟁이 가장들은 결국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채 국가의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의료보험 혜택에서도 제외되는 수모를 무슨 수로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것보다도 더욱더 젊은이들을 압박한 것은 사회적 분위기였다. 군사독재가 시퍼렇던 시절에 국가의 시책을 어기고 자녀를 여럿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이웃이나 직장 일가 친척들에게서조차 눈총을 받을 일이었다.

모두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논란이 되고 있는 저 출산 문제를 보고 있으면 격세지감이 든다. 시대의 양상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혹은 사람들의 의식도 시대에 따라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 하게 된다.

이제 정말 세상은 아들 딸 구별 않고 둘만 낳는 세상, 다시 아들 딸 구별 않고 하나 아니면 낳지 않는 풍토가 되었다. 급기야 결혼은 필수가 아니요 선택이라든지 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니 Single족, Tonk족(Two Only No Kids) 하는 신조어들이 만들어지는 세태가 되었다. 반 강압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친 지 한 세대가 채 가기도 전에 정부는 출산장려정책으로 바꾸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얼마 안 되는 금전적 혜택을 받으려고 자녀를 더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급격하게 출산 기피현상이 도래한 것은 정부의 정책에만 기인한 것이기 보다 국민들의 체험으로 여러 자녀가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출산 장려도 정부의 몇 가지 시책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자녀를 여럿 낳아도 고생하지 않고 기르고 교육시킬 수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될 때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 진화 생물학자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는 양육 환경만 갖추어지면 개체수는 증가한다고 말한다. 인간도 생명체인 이상 마찬가지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저 홍보성 구호에 지나지 않을 지원금을 내세워 인구정책을 수립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취업여건을 개선하고 유아교육시설을 확충하고 사교육비를 해결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출산장려정책이 낯설고 저항감을 느끼는 국민이 상당수 임을 감안하여 중장기적인 인구대첵을 세워야지 반환점을 돌아 내달리듯 급격하게 논의가 진행되다보니 국민들의 입장에선 여간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다. 좀더 신중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어떤 근거로 출산장려정책이 필요한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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