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애인들에게 띄우는 연서

2006.02.10 16:01:00


개학날은 다가오는데 하지 못한 숙제를 마치느라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우리 1학년 아이들이 꼬박꼬박 기다릴 답장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편지지에 글을 썼습니다. 웬만하면 모든 글을 워드로 작업하여 보내다보니 글씨를 직접 쓰는 편지가 오히려 부담이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미주알고주알 써 보낸 편지는 단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룬 게 코 앞까지 와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글을 깨우치고 맨 처음 보냈을 편지였을 터이니 그 기다림이 얼마나 컸을 텐데 야속한 담임 선생님은 이제야 숙제를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

전자우편이나 컴퓨터로 써낸 편지에는 정감이 덜할 것 같아 손으로 쓰기로 했는데 컴퓨터로 쓰는 것보다 열 배나 더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쓰기 싫어해서 평소에도 쓰기 숙제는 최대한 억제하는 편입니다. 쓰고 싶은 말은 아주 많은데 장수를 불려가는 게 힘들어서 아이들마다 한 장으로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미안해서 취미로 모아둔 예쁜 기념우표를 두 장씩 붙이고 편지 봉투도 고운 한지로 써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개학하기 전에 받을 수 있도록 빠른 우편으로 보내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1학년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받는 선생님의 편지이니 저랑 헤어진 뒤에도 오래오래 간직할 거라고 생각하니 글씨도 또박또박 썼습니다. 날마다 아이들에게 예쁜 글씨를 쓰라고 주문처럼 외운 담임 선생님의 글씨가 흐트러지면 말발이 안 서겠지요?

이제 보니 현대인은 가장 기본적인 마음을 나누는 것조차 잊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행복하고 받아서 행복하며 두고두고 그 마음을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인 편지마저 컴퓨터로 대신하고 사는 살벌한 인정을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6년에 교실에서 꼭 해야 할 일 중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내 반 아이들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전하겠다는 다짐을 자신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방학날이나 졸업식날에만 써주는 편지가 아닌 평상시에 꾸중하고 싶을 때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쓰자고 자신과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몇 십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님께 보냈던 제 편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세상나들이를 하며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께 보냈던 편지. 그 아버님은 제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으시며 객지에 보낸 자식을 그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이고 상자 속에 보물처럼 담아 남겨 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누렇게 바랜 초등학교 때의 생활통지표와 편지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아버지의 체취를 찾곤 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제가 보낸 편지가 누렇게 되도록 상자 속에 담아놓고 옛 담임을 생각할만큼 잘 해 주었는지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1년 동안 칭찬보다 고칠 점을 너무 많이 가르친 것같아 아무래도 자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학년보다 학습 부담은 적지만 몸에 익혀야 할 좋은 습관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라서 잔소리를 많이 한 제 마음을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 꼭 말해 주고 싶습니다.

'연필을 바르게 잡는 일, 글씨를 예쁘게 쓰는 일, 잘못을 사과하고 고치는 일, 공중 도덕을 지키는 일, 화장실을 바르게 쓰는 일, 고운 말을 쓰는 일, 친구를 배려하는 일, 부모님을 소중히 하는 일, 공부하는 자세를 갖추는 일, 식사 예절을 지키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감사하게 먹는 일과 같이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일들은 평생 동안 지켜야 할 약속이니 1학년 때부터 지켜야 한단다. 버릇없는 아이로 자리지 않도록 잔소리를 많이 한 선생님 마음을 알겠지? 사랑스러운 우리 1학년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뿐임을 잊지 말거라.'

오늘은 개학 준비를 하며 학교에 나와서 교실을 정돈하고 아이들의 자리를 깨끗하게 걸레질하며 나의 '작은 애인들'을 그리며 이 글을 올립니다. 겨울방학 동안 키가 한 뼘씩은 자랐을 대견한 모습들이 벌써부터 창 밖에 보일 듯합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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