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즌이다. 이미 졸업식을 한 학교들도 많지만, 앞두고 있는 학교들도 많이 있다. 가끔 대학졸업식의 텅 빈 좌석을 볼 때면 이 시대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 시기인가를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는 듯 같아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이런 여파인지 몰라도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학교마다 텅 빈 졸업식장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학생 수가 적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을까 별의별 수단을 이용해 아이들이 참석하도록 하고 있다.
“졸업식만 되면 걱정이야. 졸업식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업식에 많은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으니까 다른 외빈들 보기도 그렇고….”
“맞아요, 저도 이전 학교에서 졸업식 당일 날 애를 먹었던 적이 있어요. 학생 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많은 아이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많이 빠지다 보니 정작 시상식에 오를 만한 아이들이 없어 낭패를 본적이 있어요.”
“시대가 그러니, 어떡하겠어요.”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공감을 하면서도 별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졸업하는 학생 수가 고작 몇 십 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공통된 고민들을 다들 안고 있다.
방학이 끝나고 졸업을 앞둔 고3 졸업생들의 반을 맡고 있는 담임선생님들은 벌써 아이들 출석 관리하는 데 대부분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졸업식 날 참석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을 마련하고, 아이들에게 반강제 이상의 협박 아닌 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졸업식 날 참석하지 않는다면 개근상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저축해 놓은 통장도 받지 못할 줄 알아. 졸업식 당일 날 여러분들이 3년 동안 저축한 통장과 기타 상장 및 상품을 식이 끝나고 줄 테니까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참석하도록 해.”
선생님의 협박 아닌 협박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식은 관심외의 영역이 되기 일쑤다.
“선생님, 죄송해요. 집안에 사정이 생겼어요. 통장은 나중에 받으러 갈께요.”
“후배들한테, 보기 부끄러운데. 어떻게 와요. 선배라고 뭔가 보여줄 것이 있어야지.”
“이놈아, 정작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면 지금 그런 생각이 들겠니.”
“에이, 선생님도 졸업하는 마당에 그러지 마세요.”
아이들은 제각각 변명을 늘어놓으며 졸업식장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 아이들 마음이야 이해하겠지만, 평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고등학교 졸업식에 나오지 못하겠다는 아이들의 의도를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아이들을 졸업식장에 오도록 하는 것이 정말로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도 없이 억지로 끌려와서 맞이하는 졸업식이 그네들에겐 진정 결실의 의미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막막하기만 해서 선배 선생님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기도 했다.
“선생님, 졸업식 때 아이들이 많이 결석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죠?”
“그냥,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나오게 만들어야겠지.”
“선생님도 농담하시지 말고 말씀 해 주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시대적인 추세인가. 무슨 수단을 강구해도 오지 않는 아이들은 오지 않더라고. 어떤 아이들은 졸업사진을 물론 통장도 찾아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더라고. 하지만 끝까지 오지 못하겠다는 아이들은 졸업식 나오지 않는다고 졸업을 안 시킬 수는 없잖아. 울며 겨자 먹기로 넘어가는 거지 뭐…”
텅 빈 대학졸업식의 광경을 종종 언론을 통해 보게 된다. 대학졸업을 하고도 제대로 살아 갈 길을 개척하지 못한 이들의 축 늘어진 어깨를 졸업식장의 텅 빈 좌석들이 대신하는 모습은 때론 을씨년스러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 광경을 우리 아이들의 졸업식에서 또 볼까 두렵기도 하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졸업식이 피해가고 싶은, 혹은 참가하기 싫은 행사로 전락한다면 이는 우리 교육의 어두운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졸업식이 임박했다. 여기저기 졸업식을 준비하느라 학교는 부산하다. 특히 고3학년 담임선생님들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전화통을 붙잡고 아이들 출석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지 못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반 협박 아닌 협박으로 나무라기도 하고 으르기도 한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졸업식에 왜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생겨날까. 자꾸만 헛도는 우리 입시정책이나 자꾸만 어려워지는 우리 살림살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불연 듯 뇌리의 한 곁을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