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기념일을 맞아 직원들과 여러가지 의견을 나눈 결과 상당산성을 다녀오기로 했다. 상당(上黨)은 백제 때 청주 일원을 일컫던 지명으로 사적 제212호인 상당산성(上黨山城)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상당산성은 둘레 4.4㎞, 높이 6∼13m, 면적 5만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며 치성이다. 상당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또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고적조에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뒤)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7773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중인 선조 29년(1596)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에서 45년까지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성벽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현재 상당 산성에는 동문(진동문), 서문(미호문), 남문(공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그리고 동장대가 있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공남문 앞 광장에 있다.
성내에는 전통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민속주인 대추술과 다양한 토속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시내에서 가깝고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평일 날에도 청주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휴식공간이다.
공남문 입구에 가면 문화유산 해설사로부터 산성의 역사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안금자 해설사에게 미리 부탁을 해 직원들이 상당산성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도록 했다. 설화나 풍수지리에서 하늘의 사방(四方)을 지키는 신으로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을 얘기한다. 공남문 천정에 그려져 있는 주작을 보면 이곳이 남쪽의 문임을 알 수 있다. 주조(朱鳥)라고 불리기도 하는 주작은 남쪽의 수호신이다. 불을 다스리고 남쪽을 수호하는 붉은 새인 주작은 현실과 상상의 동물이 복합된 봉황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3월 중순인데 눈까지 내리니 산성의 풍경이 더 운치 있게 보였다. 인근 식당에서 직원들과 화합의 시간도 가졌다. 공자가 ‘부귀영화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도덕을 어기면서 탐하지 말아야 하고, 가난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도덕을 어기면서까지 피해서는 안 된다’며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뤄내려면 마음을 내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로 만나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직원들이 마음을 전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벌써 전체 직원이 화합하는 시간을 세번이나 가졌다. 그런 시간을 통해 누가 하든 앞에서 추진하는 대로 따라주며 상대방의 좋은 점만 이야기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이뤄지고 있다. 같이 생활한 기간은 짧지만 교무실 분위기에 신바람이 나니 추진하는 일들마저 재미있다. 이런 분위기가 아이들 교육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더 보람으로 여긴다.
*포곡식 산성 : 내부에 넓은 계곡이 있고,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산성.
*치성 : 성곽의 일부를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방향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서 凸 모양으로 만들었다.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는 꿩(雉:치)에 비유해 치성이라고 부른다.
*암문 : 적에게 들키지 않게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작은 문을 만들어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이 암문(暗門)이다. 유사시에는 문을 닫고 주변에 쌓아 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메워 폐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