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감동적인 작품이다.
워싱턴 광장 서쪽에 위치한 작은 동네 ‘그리니치빌리지’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아 ‘예술가촌’이라고 불린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메인주 출신의 수우와 캘리포니아 출신의 존시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고, 이후 함께 화실을 꾸미고 같이 살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예술가촌에 폐렴이 돌기 시작하고, 존시가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된다. 존시를 치료한 의사 선생님은 나을 가망성이 열에 하나라며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좋아질 수도 있는데 ‘존시는 삶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해 수우를 슬프게 한다.
수우는 슬픔을 감추고 이불을 덮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잠이 든 존시의 방 한쪽 구석에서 그림을 그린다. 수우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존시의 침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는 줄 알고 있었던 존시는 창밖을 바라보며 숫자를 세고 있다.
“열 둘, 열 하나, 열, 아홉, 여덟, 일곱”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숫자만 세고 있어 창밖을 내다보니 쓸쓸하고 텅 빈 뜰과 벽돌로 된 볼품없는 담장만 보인다. 그리고 그 담에는 늙은 담쟁이덩굴 한 그루가 중간까지 뻗어 있고, 담쟁이에 붙어 있던 잎들마저 차가운 가을바람에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존시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여섯이라고 말한다. 사흘 전만 해도 백 개 정도 있어 세기조차 힘들었는데 이젠 너무 쉬울 만큼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에 존시는 절망하고 있다. 그때 한 개의 잎이 또 떨어진다. 이제 남은 잎은 5개밖에 없다.
희망을 주기 위한 수우의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시는 담쟁이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자신은 죽게 된다고 믿는다.
수우는 아래층에 살고 있는 화가 베어먼 아저씨에게 간다. 화가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하나도 그리지 못한 무명의 화가다. 언젠가 걸작을 그릴 거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상업용이나 광고용의 시시한 그림을 그리거나 젊은 화가들의 모델이 되어주며 모델료로 근근이 생활하는 실패한 화가다.
이날도 베어먼 아저씨의 화실에는 술 냄새가 코를 찔렀고 25년 동안 걸작이 그려지기만을 기다려 온 캔버스가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다. 수우는 베어먼 아저씨에게 눈물을 흘리며 존시의 이야기를 하고, 베어먼 아저씨는 말없이 수우의 어깨를 감싸준다.
수우와 베어먼 아저씨가 존시의 방으로 올라왔을 때 존시는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하필 창밖에는 진눈깨비마저 내리고 있어 두 사람은 창 너머 담쟁이덩굴을 내다보며 걱정스러워한다. 수우는 커튼을 내려 창문을 가리고 베어먼 아저씨를 모델로 광부의 그림을 그린다.
그 날, 밤새도록 폭풍우가 휘몰아쳐 그나마 남아 있던 담쟁이 잎들이 모조리 떨어질게 분명해 수우는 밤을 지새운다. 이튿날 아침, 존시는 커튼이 내려진 창문을 바라보며 수우에게 담쟁이덩굴을 보고 싶다고 애원한다. 모든 것을 체념한 수가 떨리는 손으로 커튼을 잡아당기고 보니 담쟁이 잎 하나가 남아있다. 마지막 잎사귀 하나가 줄기에 매달려 매서운 바람을 이겨낸 것이다.
마지막 잎사귀를 본 존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마음을 바꾼다. 스프와 우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의사 선생님도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간호만 잘하면 된다고 말했고, 침대에 앉아 뜨개질을 할 수 있을 만큼 몸도 회복된다.
하지만 수우는 존시에게 꼭 해줘야할 얘기가 있었다. 베어먼 아저씨가 병원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고. 병이 나던 날 수위 아저씨가 베어먼 아저씨 방에 가보니 구두와 옷이 젖은 채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불 켜진 등ㆍ사다리ㆍ붓ㆍ노란색과 녹색 그림물감을 푼 팔레트가 옆에 흩어져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존시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마지막 남아 있는 담쟁이 잎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잎새는 베어먼 아저씨가 남긴 최후의 걸작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에 갖은 고생을 이겨내며 정성을 다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그 자리의 벽에 대신 잎새를 그려 넣은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인정과 애환이 잘 드러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와 같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이 지금 중국에서 현실로 일어났다. 각종 언론에 의해 소식이 알려지며 중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는 사연은 이렇다.
지린성 주타이시의 루자초등학교에 다니던 주신웨양은 지난해 10월 체조시간에 갑자기 쓰러져 뇌종양 말기라는 진단을 받아 시력까지 잃었다. 신웨는 평소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신웨의 안타까운 사연이 지방의 한 신문에 소개되자 사람들이 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물이 찬 상태여서 베이징까지의 머나먼 여정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소중한 딸의 마지막 소원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신웨의 마음속에 남을 천안문광장 모형을 창춘시에 만들기로 하자 중국의 한 신문이 신웨 아버지의 황당할 만큼 엉뚱한 생각을 다시 전했고, 창춘시의 300만 시민들이 마지막 잎새를 그리겠다고 나섰다.
드디어 지난 22일, 아버지는 베이징으로 간다며 신웨와 함께 미리 준비된 버스에 올랐고 집 앞에는 버스에 오르는 소녀의 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가짜 선양(瀋陽) 톨게이트, 가짜 베이징 경찰, 가짜 베이징 시민, 가짜 의장대까지 동원되어 신웨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게 했다.
힘겹게 손을 들어 경례를 하는 창백한 아이의 모습을 TV화면으로 봤다.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베어먼 아저씨나 신웨를 위해 나선 창춘시의 300만 시민들이야말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든 일등공신들이다.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미담을 보며 모 방송국의 ‘돌아온 몰래카메라’라는 프로를 생각했다. 코미디언인 사회자가 유명 인사들을 감쪽같이 속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코너다. 부활을 강조하는 이 프로를 본 사람이라면 동원되는 가짜 대역들과 물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유명 코미디언이 사회를 보고, 물량을 마음껏 동원할 수 있을 만큼 경비가 뒷받침 되는데 왜 억지웃음을 만드느라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프로들이 앞장서면 각종 매스컴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리 식의 마지막 잎새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서도 마지막 잎새를 그린 베어먼 아저씨 같이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이 넘쳐나야 한다. 창춘시의 300만 시민들과 같이 좋은 일에는 발벗고 동참할 줄 알아야 한다. 따뜻한 봄날 마지막 잎새의 부활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