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4월을 맞이하는 봄날인데 아침에 눈발이 날렸다. 평소 같으면 운동장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던 양성산(대청댐이 바라보이고 역사가 깊어 청주 인근의 사람들이 즐겨찾는 산)의 팔각정자도 눈발에 사라졌다. 하지만 산중턱부터 만들어놓은 설경이 감탄사가 나올 만큼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설경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찬바람 때문인지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다. 추위에 움츠리는 것보다는 설경도 구경하면서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 놀도록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여자 아이들 몇 명이 급하게 골마루를 뛰어간다.
"야! 골마루에 새가 날아다니네."
"어떻게 들어왔지?"
"무척 예쁘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급한 공문이 있어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빨리 나와 보라고 보챈다.
"선생님, 빨리 나와 봐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야 할 새가 골마루로 날아들었으니 아이들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니 새가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에 둘러싸여 넋이 나갔는지 새는 날지도 않은 채 눈망울만 굴리고 있다.
마침 설경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교실에 있었다. 가까이 가면 날아갈까 조심하며 골마루에 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숨소리를 죽여 가며 사진촬영을 도와준다.
"새가 무척 예쁘지요."
"그래 참 예쁘구나. 그런데 새를 어떻게 할까?"
"선생님, 살려줘요."
순진한 아이들이라 마음이 같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떠보느라 던진 말에 일제히 대답을 한다. 새를 가까이서 보는 것을 신기해 하면서도 날지도 않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나 보다.
새를 두 손으로 살포시 감싸 쥐고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졸졸 따라나선다. 밖에 나와 손을 펴자마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수돗가 대나무 숲 쪽으로 힘차게 날아간다. "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사람이나 조류나 자기가 살던 곳이 편하고 좋은가보다. 새는 짧은 시간이지만 길을 잘못 들어 고생도 했고,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비록 한 마리의 작은 새였지만 우리 학교 아이들은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웠을 것이다. 나도 생명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가슴이 뿌듯했다. 잘못 날아든 새처럼 교육하는데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아침부터 덤으로 즐거운 일이 생긴 하루였다. 세상사 생각하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가끔은 이렇게 좋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덤으로 즐거워하는 게 인생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