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찌든 아이들에게 그나마 학교에서 그들의 장기와 특기를 마음껏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다름 아닌 계발활동 시간이다. 하지만 정규수업 시간에 밀려 갈수록 그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토요 휴무제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줄어드는 수업시수의 제일 타겟이 되고 말았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규수업 시수는 과도하게 짜 놓고, 여타 학생들의 활동인 행사나 계발활동은 가외로 잡아 놓는 경우가 많다. 정규수업 시간은 줄일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교에서의 방침이다.
계발활동은 하지 않나요?
이는 학년이나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심화되는 형편에 있다. 특히 고3 학생들은 계발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표상에만 잡혀 있을 뿐이지 정작 그 시간에 자율학습이나 대개 보충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그저 아이들은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 우리학교에는 계발활동 하지 않나요. 한달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 계발활동을 한 시간도 하지 않는데, 혹시 계발활동을 이름만 있고 실제 하지 않나요?”
“그럴 리가 있나. 아마 여러 가지 행사나 정규교과 시간 때문에 부득이하게 밀렸거나 연기되었을거야.”
“그래도, 정규교과 시간은 중요하고 계발활동은 중요하지 않나요.”
“하긴 그렇긴 하네….”
신입생이라 아직 학교의 사정을 모른다 해도 제법 이야기 하는 모습이 다부져 보여 한편으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조금만 지나보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거니 싶어 그냥 답을 회피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한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다 싶어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이 운영이 가져 온 모습에 씁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으로 멍든 우리 교육 현실
그 아이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작은 시골 학교에서도 입시위주의 교육과정 때문에 파행을 겪고 있는데, 대도시의 일명 입시 명문 학교들은 상황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할 일이었다.
“대체 이 놈의 교육과정을 꼭 정규교과목 위주로만 꼭 편성해야 합니까, 정말로 아이들이 학교에서나마 특기나 적성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계발활동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데….”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다들 알면서도 그냥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 아니겠어. 정말로 입시 위주의 체제만 아니면, 학교를 바꿀 수 있을 건데.”
“특히 휴무 토요일이 생기면서 정규교과 시간은 그대로 놓아둔 채 계발활동 시간 등을 줄이니 아이들의 볼멘 소리가 나올만도 하지요.”
선생님들도 다들 문제점은 인식하면서도 입시위주의 교과 편성이 부득이하다는 태도가 대부분이었다. 즉 교과위주의 정규 교과시간이 우선이지 여타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그리고 여타 활동에 치중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휴무 토요일이 시행되면서 정규 교과시간은 줄이지 않은 채 할 수 없이 토요일에 들어 있던 교과시간이 여타 요일로 오면서 기타의 학생활동 시간이 줄 수밖에 없는 교육 정책상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하지만 한달에 기껏해야 한 번 정도 돌아오는 계발활동 시간을 위해 부득이하게 계발활동 반을 편성해야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공부 이외의 활동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그런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학교 사정에 따라 생긴다.
최근 입시에서 논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본교와 같은 시골학교에서도 논술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특히 몇몇 우수한 아이들을 일류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열망이 학부모들과 교사들, 나아가 지역에서조차 거세게 부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본교에서도 논술반을 개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논술반이지 실제 아이들의 입시 위주와 관련된 글쓰기 지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개설된 반에는 정작 와서 논술지도를 받아야 할 아이는 오지 않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부득이하게 아이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 왜 논술반에 들어오지 않고 축구반에 지원했니?”“선생님도, 축구가 재미있고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어 싶어서 축구반에 들었는데, 혹시 제가 뭐 잘못이라고 했나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앞으로 좀더 나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축구반보다는 논술반에 와서 일찍 논술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하는 말이다.”
“선생님 말씀은 알겠어요. 한 번 고민해 볼께요.”
교사로서 아이에게 마치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듯 싶어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교사의 양심으로 진정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도 혼란스러웠다.
내심 교사로서 그 아이에게 거는 나의 욕심이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또한 그 아이의 부모와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가 거는 기대를 저버릴 수 만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 아이의 생각와 의견은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교사인 나만의 생각으로 아이에게 축구반보다는 논술반에 들어오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것이다.
정말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의 자리에서 이해하고 바라보겠다던 애초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덧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정말로 제대로 된 교사의 자리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