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아이들의 속셈을 한 방에 날리다

2006.04.03 08:39:00


지난 4월 1일,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입실하여 아침 조회가 막 시작될 무렵 갑자기 책상을 두드리며 지르는 아이들의 환호성에 조용히 교무실에 앉아있던 선생님들이 모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만우절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회가 시작되기 직전 올해 새로 맡은 학생부장이 교내 방송을 통해 “학생회에서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그동안 시행하지 못했던 두발과 교복을 4월부터 전면 자율화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 모든 선생님들까지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긴급속보였다.

그러나 이어서 학생부장은 침착하게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여러분이 두발이나 교복 자율화를 얼마나 원하는 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입니다”고 하면서 두발 규정과 교복 착용의 당위성을 차분히 강조하며 설득력 있게 훈화를 했다. 거짓말사태(?)의 원만한 수습은 물론 생활지도까지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는 선생님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때는 이미 몇 개 반은 만우절이면 흔히 써먹는 ‘책걸상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간 뒤여서 선생님들을 먼저 속이려던 아이들의 속셈을 보기 좋게 따돌리며 통쾌하게 보복한 셈이다.

수업이 시작되어 복도를 지나가자니 교탁과 반대로 책상을 돌려놓고 앉아있는 반, 아예 교실을 바꿔 앉아 있는 반, 교실 팻말을 바꾼 반, 그리고 교복을 돌려 입고 앉아 있는 반까지 다소 고전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만우절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미 ‘두발자율화 방송’ 한 방으로 맥이 빠진 상태여서 아이들의 노력이 민망하기만 했다.

모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만우절 가장 난감했던 에피소드는 ‘놀라운 거짓말에 아무런 반응 없이 무덤덤하거나 오히려 만우절이 통하지 않는 선생님한테 걸려 되레 우울해 질 때’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우절은 119나 112가 가장 긴장하는 날로써 유일하게 ‘선의의 거짓말’에 관대해지는 이 날 장난전화의 ‘타킷’이 되었지만 지금은 발신전화 표시 뿐 아니라 위치까지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그 또한 사라져간다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요즘 만우절의 거짓말을 권장할 만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갈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각박해지는 인심 때문인지 학교에서 아이들의 애교에 한 번쯤 속아 넘어가고 시시껄렁한 주변의 소음(?)에 미소라도 지어주는 넉넉함이 아쉬운 시대가 된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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